'바흐'에 해당되는 글 21건

  1. [이건 역대음악회 소개] 13회 무지카 안티쿠야 쾰른 2018.11.08
  2.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출판과 음악에 미친 영향 (2) 2018.08.21
  3.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 2017.12.08
  4.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본 위대한 3B 음악가들(바흐, 베토벤, 브람스) 2017.06.04
  5.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첼로의 역사를 새로 쓴 카잘스. 역사에서의 B.C의 의미는? 그럼 테너와 소프라노, 첼로리스트들에게 있어서 B.C의 의미는? (2) 2016.01.20
  6.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바흐의 마지막 작품. 아르슈타트과 뮐하우젠 시대, 바이마르 시대, 괴텐 시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만년의 걸작들을 만들었던 라이프치히 시대까지.. 2015.10.28
  7. [음악사 최고의 기적,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비밀] 천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한 시냇물(Bach). 음악사의 가장 놀라운 기적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4) 2015.04.28
  8. [음반소개] piano lied 2013.12.26
  9. 24회 이건음악회 - 시몬 디너스틴(Simone Dinnerstein) 공연 티켓응모 이벤트 -시모나 디너스틴 무료 공연 티켓 신청하기 (164) 2013.09.25
  10. 제 24회 이건음악회 - 시몬 디너스틴 초청 연주회 안내 (Simone Dinnerstein, 시모나 디너스틴 골드베르크 변주곡) (18) 2013.09.12

[이건 역대음악회 소개] 13회 무지카 안티쿠야 쾰른[이건 역대음악회 소개] 13회 무지카 안티쿠야 쾰른

Posted at 2018.11.08 10:4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본 글은 이건 음악회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으로,

해당포스트는 2002년에 있었던 이건음악회 13회 소개글입니다.




열세번째 이건음악회에서 모십니다.


올해는 독일의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을 초청하였습니다.

이들은 바흐,헨델, 텔리만 등 17-18세기 바로크 음악에 대한 원전주의적 해석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협연자인 카운터 테너 악셀쾰러는 헨델의 전문가로 이름이 높습니다.

특히 무지카야 안티쿠아 쾰른은 독일문화원이 주선한 평양 연주에 이어서 내한하게 되어 남북의 청중을 고루즐기는 쵲=초의 음악시절로 소중하게 기억될 것입니다.

자닌 6월 월드컵의 감격을 간직하고 계신 여러분들께 이번 무지카야 안티쿠아 쾰른의 연주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200210

이건가족을 대표하여 참역주 삼가

 

 

 

 



이건음악회와 함꼐 하는 뜻 깊은 가을로의 초대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끄는 세계적 명성의 독일 바로크 앙상블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이 동남아.중국투어의 마지막 공연을 북학과 남한에서 연이어 하게 된 것을 짐심으로 환영합니다. 한국에서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이 앙상블이 다시 한번 애호가들에게 음악을 들려ㅈ드릴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신 박영주 회장님께 특히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지난 12년간 세꼐적 수준의 음악가와 앙상블만을 선보여온 이건음악회를 주한 독일문화원이 처음으로 함꼐 기획하고 주최하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건음악회를 위해 특별히 구성한 프로그램에서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독일의 대표적 카운터 테너인 악셀쾰러가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과 함께 공연합니다.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의 이번 남한과 북한에서의 공연이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남북한 문화 협력의 틀 안에서 한반도의 평화 공존에 기여할 것을 기대합니다. 서울, 인천, 대전, 부산, 그리고 평양애서의 성공적인 공연을 기원합니다,

2002 10

 

독일문화원장 우베슈멜터

Dr. Uwe Schmeler

Leiter Goethe-IInstitut Iner Nariones Seiul

 



무지카 안티쿠아쾰른 (Musiea antiqua Kola)


25년 이상, 라인하르트 괴벨이 이끄는  Musica Anyiqua Koln(이하’MAK’)은 각종 음악회와 음악축제에서 고음악을 주로 연주해 왔다. 특히 17,18세기 음악에 대한 원전주의적 해석 및 연주로 그 명성이 놓다. 1973년 라인하르트 괴벨과 쾰른 코서르바토리 출신의 학생들에 의해 결성된 MAK는 초기에 바로크 시대 실내 악고고가 종교음악을 연주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그들은 1979년 영국 런던의 퀸엘레자베스 홀과 네덜란드의 홀랜드 음악축제에서의 5회 연주로 국제 무대에 진출하였다. 현악과 관악 연주자를 증원한 후 10주년 행사부터 소규모 오케스트라급의 면모와 레파토리로 연주와 녹음을 하기에 이르렀다.

 

1981년 이래  MAK는 악장인 라인하르트 괴벨과 함께 정지적으로 미국 연주 여행을 하고 있다. 호주와 남미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으며, “바흐 탄생300주년 긴념의 해 1985년에는 특별히 중국에서 여주회를 가졌다. MAK는 독일 북부 뤼벡시로부터 북스테후데상을 받았고, 지멘스로부터 상을 수상했으며, 1981년에는 도이치 포노아카데미로부터 올해의 아티스트에 선정되었다. 1952년 베스트팔렌주 siegen애서 태어난 괴벨은 정규 교육울 받은 후 쾰른 및 에센에서 음악 공부를 하였으며, Eduard Melkus Marie Leonhadr 지도 하에 수년동안 음악학을 연구 했는데 이로인해 고음악 레퍼터리에 대한 방대한 지식을 갖게 되었다, 또한 MAK가 독특하고 개성적이며 차별화된 연주와 녹음을 할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1978년 이래 MAK 괴벨은 Archiv Produktion 과 독점음반 발매 계약을 맺었다. 이로인해 흔치 않은 고음악 레퍼토리에 대한 발견과 그것을 현실화시키는 혁신적인 역할을 국제적으로 알려졌고많은 상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Grand Prix international du Disque Grammophon Award등 유수한 음반 녹음상을 수상하였으며, Heinichen Dresden Concerri  앨범은 세꼐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소프라노 안느 소피 폰 오토와 합연한 헨텔의 성모 마리아 칸타타와 아리아도 대단한 찬사를 받았으며, 이후 샤콘느로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적도 있다. 1999 7  MAK “Farinelli” 영화로 잘 알려진 벨기에 출신 감독Gerard Corbiau “Le Roi Danse” 의 영화음악을 제작하였다. 이 영화와 음악은 2000년 가을 프랑스와 벨기에에서, 2001 4월독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고, 2001년 가을 Echo-Klassik상을 수상했다.

 

 

악셀쾰러 (Axel Kohler)

 

카운터 테너이자 음악감독인 악셀 쾰러는 슈바르젠베르그에서 태어났으며, 드레스덴의 칼 마리아 폰 베버 음악학교에서 바이올린 교수법과 성악을 공부 했다. 졸업과 동시에 할레에서 바리톤 가수로 데뷔하였으나, 2년 후에 마리안 퓌셔-쿱훼와 제시카캐시의 조언을 받아들여 카운터 테너로 바꿨다.

 

악셀쾰러는 크리스티안 클루티그의 후원 하에 할레의 헨델 페스티발에서 핸델의 작품 리날도의 에우스 타시오역(카운터 테너)으로 전문적인 데뷔를 했다. 그 이후로 그는 소사르메’, ‘쥴리오 세자르’, ‘오를란도’,

타메르라노’, ‘톨로메오의 즈역을 맡음으로써 국제적으로 헨델전문가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독일 뿐만아니라,미국, 영국, 이탈리아, 일본에서도 공연을 했으며, 현재는 연주자로서만이 아니라 음악 연출 및 감독으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유럽의 주요 음악도시에서 펼쳐지는 콘서트와 음악축제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작품 연출에 대한 활동과 음반 녹음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그오 함께 작업을 하는 지휘자들은 르네, 야콥스, 마르쿠스 크리드, 호워드 아르만, 이보르 볼튼, 헬무트 릴링 등이 있다.1999년에 그는 Kammersanger(궁정가수) 칭호를 받았고, 베를린 신문으로부터 비평가상을 수상하였다.

 

Orlando

 -

Orlando verfallt dem Washnsinn und der Reaserei, weil seine lide zu Angelica nicht erwidert wird. Er glaubt sic him Reic des Todes, indem er all die Gotter der Unterwelt und die Furien und Larven zu treffen glaubt, dort meint auch seinen Rivalen Medoro zu sehen und will ihn Strecke brigen


오를란도는 안젤리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이 보답받지 못했기 때문에 광포해지고 미쳐버린다. 그는 자신이 지하 세꼐의 모든 신들, 푸리아들 그리고 괴물들을 접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자신이 죽음의 왕국에 있다고 믿는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연적인 메도로를 보고 그를 죽이게 될것이라고 말한다.

 

Orlando

 -

Orlando versucht seine Angebetete Angelica zur liebe zu bewegen, indem er ihr leifenschaftlich vortragt, dass er fur sie in jeden Kampf ziehen wurde, um Ungeheuer und Drachen zu besiegen. Trophaen dieser Siege waren sein Geschenk der Liebe an sie….


오를란도는 자신의 애인 안젤리카를 위해서 괴물과 용들을 물리치기 위한 모든 싸움에 임할 것이라는 것을 그녀에게 정열적으로 연설하여 그녀를 사랑으로 감동시키려고 애를 쓴다. 이 승리의 트럼펫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선물이 될 것 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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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출판과 음악에 미친 영향[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루터의 종교개혁이 출판과 음악에 미친 영향

Posted at 2018.08.21 08:4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루터의 종교개혁이 출판과 음악에 미친 영향

 

2017년은 루터가 카톨릭 교회에 맞서 개혁을 외친 지 500년이 되는 해입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종교만 바꿔놓은 게 아니라 독일과 유럽을, 그리고 세상을 온통 뒤집어놓았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달라졌고 음악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의 조상쯤으로 떠받들고 있는 바흐의 종교음악 대부분이 루터 파 교회의 예배를 위해 작곡한 곡이라는 사실 만으로도 당장 그 영향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렇듯 직접적인 것보다는 간접적인 영향이 오히려 더 큰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출처 : https://bit.ly/2ORl49H) 


카톨릭 교회의 부패와 성서의 왜곡을 바로잡고자 비텐부르크에 있는 만인성자교회의 문앞에 "95개의 논제"를 써서 붙인 것이 종교개혁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정작 독일 국민의 95퍼센트는 그것을 전혀 읽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당시의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그랬듯이 루터도 그 논제를 라틴어로 썼고 라틴어를 읽고 쓸 줄 아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통한 신과의 직접 소통과 구원을 설파했던 루터는 이를 위해 당장 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서둘렀고 번역한 성서를 출판하고 보급하는 일에 모든 힘을 쏟았습니다. 그 결과 집집마다 성경책이 있어 누구나 독일어를 읽고 쓸 수 있게 되었고 그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상 또한 빠르게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일이 독일 밖의 여러 나라로 전파되면서 유럽은 전에 없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게 됩니다.

 

출처 : https://bit.ly/2Bsc2hw


종교개혁과 성서의 보급은 인쇄술과 출판업의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악보의 인쇄와 출판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 덕에 바흐는 평생 독일 땅을 벗어나지 않고도 유럽 각지의 수 많은 작곡가들의 작품을 악보로 만날 수 있었고 그렇게 알게 되어 습득한 그들의 서로 다른 기법과 양식을 하나로 통합할 수 있었습니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를 잃은 바흐는 오르트루프(Ohrdruf)에 있는 교회의 오르간 주자였던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1671~1721)에게 맡겨졌습니다. 형으로부터 오르간을 배우긴 했지만 바흐의 작곡 공부는 거의 독학이었고 그것은 주로 형이 가지고 있던 여러 작곡가들의 악보를 손으로 베끼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중에는 형이 사보를 허락하지 않은 대가들의 곡들도 많았는데 프로베르거(Johann Jakob Froberger 1616~67)와 케를(Johann Kaspar Kerll 1627~93), 북스테후데(Dietrich Buxtehude, 1637~1707)와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등의 작품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형이 잠든 늦은 밤에 책장에서 몰래 악보를 꺼내 달빛을 등불 삼아 악보를 베끼는 힘겨운 나날이 이어졌지만 그것이 훗날 바흐의 업적을 만든 바탕이 되었습니다.

 

출처 :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077


바로크 시대를 지나 고전주의 시대에 들어서자 악보는 더 이상 음악가들을 위한 전유물이 아니었습니다. 산업의 발달로 경제력을 갖게 된 중산층과 시민계급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음악에 대한 수요도 급증하였습니다. 경제적인 여유를 누렸다고는 하지만 음악가를 고용하여 집에 둘 형편은 아니었기에 스스로 악기를 배워서라도 음악을 즐기려 했고, 그러려면 당연히 악보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하이든의 명성은 그렇게 온 유럽에 널리 퍼졌습니다. 여기저기서 하이든의 악보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급기야 하이든이 쓰지도 않은 작품을 하이든의 곡이라고 속여서 파는 업자들이 생겨났고 그 때문에 오늘날 하이든은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작곡가들 가운데 위작이 가장 많은 작곡가로 남게 되었습니다. 에스테르하치 후작 가문에서 평생을 바쳐 일하다가 런던으로 갔을 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이든에게 열광하며 환영했던 것도 다 바다를 건너서까지 널리 퍼진 하이든의 명성 때문이었습니다. 비인으로 돌아와 임종을 맞았을 때 비인을 포위하고 있던 나폴레옹은 선발대를 먼저 하이든의 집으로 보내 그를 지키게 했고 그 가운데 한 병사는 하이든의 침실로 달려가 그가 작곡한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에 나오는 아리아를 불러 병상에 누운 노대가를 감동시켰습니다.

 


악보의 출판은 작곡가의 명성뿐만 아니라도 수입까지 늘려주었습니다. 하이든의 시대만 해도 음악가의 성공이라면 그저 돈 많은 귀족에게 고용되어 평생 그 집에서 살면서 생계 걱정을 않는 것이었지만 베토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사람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연주회를 열고, 악보를 출판하여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과감하게 실천에 옮겼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누군가에게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를 얻을 수 있었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원하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악보의 출판이 마침내 음악가에게 자유라는 날개를 달아주었습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음악의 혁명이 일어난 것입니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B2%9C%EC%A7%80%EC%B0%BD%EC%A1%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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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하고자 했던 바로크 음악의 정신

Posted at 2017.12.08 10:16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르네상스 시대 이후 새로운 예술의 흐름을 일컫는 "바로크"는 일그러진 진주라는 뜻의 포르투갈아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잘못된 추론을 뜻하는 라틴어나 속임수를 뜻하는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되었다는 말도 있지만 그 어느 것이든 썩 좋은 뜻이 아님은 틀림없습니다. 원래는 그 시대 사람들이 당대의 건축물을 일컸던 말이 점점 같은 시대의 모든 예술을 아우르는 용어로 자리잡은 것입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음악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 아닌가 싶지만 당시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말 그대로 뭔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20세기에 새로운 음악이 나타났을 때 현대음악이라 부르며 낯설고 어렵게만 생각하던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17세기 사람들은 이전까지 음악이라면 주로 노래를 하거나 춤을 출 때 함께 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그저 가만히 앉아서 들어야 하는 것이 어색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느렸다가 빨라지고 큰 소리가 갑자기 작아지는가 하면 다 함께 연주하는 부분과 몇몇이 따로 연주하는 부분, 여러 가락이 서로 얽혀서 들리는 음악과 한 선율만 뚜렷하게 들리는 음악을 나란히 이어놓는 것이 이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이 바로 바르크 시대의 기악을 대표하는 협주곡, 즉 콘체르토 양식의 전형적이 모습입니다. 콘체르토는 경쟁하다, 대립하다는 뜻의 라틴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바로크 협주곡은 서로 대조적인 부분들을 교대로 등장시켜 음악의 흐름을 만드는 음악입니다. 처음엔 합주 협주곡, 즉 콘체르토 그로소라고 하여 악단의 모든 악기가 연주하는 부분과 그 가운데 몇몇 악기들만 따로 연주하는 부분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모양새였지만 이후에 하나의 악기와 악단 전체가 서로 맞서는 솔로 콘체르토, 즉 독주 협주곡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무게의 중심이 점점 후자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협주곡의 변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 안토니오 비발디였고 그를 모방하고 연구하여 바로크 협주곡을 완성의 단계로 이끈 이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출처 : https://earlymusicmuse.com/baroquemusic/


안토니오 비발디는 1678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일생의 대부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대대로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나 체계적인 음악교육을 받았지만 어려서 수도원에 들어갔고 커서는 성직자가 되었습니다. 사제가 되었으나 병약하여 미사를 집전하기조차 어려웠고 그 때문에 베테치아의 소녀들을 위한 고아원인 오스페달레 델라 피에타의 바이올린 교사로 부임하였고 나중에는 합주장, 합창장을 거쳐 원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당시 고아원은 일요일마다 자선음악회를 열어 그 수익금으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했기 때문에 비발디는 원생들로 이루어진 합주단과 합창단을 연습시켜야 했고 그들이 연주할 음악을 작곡해야 했는데 그가 남긴 500여곡에 이르는 협주곡들은 그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이처럼 누구보다 많은 협주곡을 작곡하기도 했지만 협주곡 양식을 다루는 비발디의 뛰어난 솜씨는 처음부터 두드러지게 돋보였습니다



특히 그 많은 협주곡 가운데 처음으로 출판한 "조화의 영감"12곡은 다양한 악기구성과 조합, 음악을 펼치는 여러가지 전개방식을 시도하고 있어 바로크 협주곡의 모범과도 같은 작품입니다. 그 가운데 1, 7, 10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를 앞세운 곡이고 4번은 네 대의 바이올린, 8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곡이며 2번과 11번은 두 대의 바이올린과 첼로,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곡들입니다. 또한 8번처럼 바이올린의 현란한 기교를 적절하게 펼쳐야 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그다지 어렵지 않으면서 상큼하고 밝은 느낌이 두드러지는 10번이 있고, 6번의 경우는 바이올린을 배우는 사람이 처음으로 협주곡에 도전할 때 많이 선택할 정도로 쉽지만 아기자기한 곡입니다. "조화의 영감"은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널리 영향을 미쳤습니다. 특히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이 중의 여섯 곡을 건반악기를 위한 협주곡으로 편곡했을 정도로 이 작품을 높이 평가하여 기꺼이 스스로의 음악 속에 받아들여 발전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바로크 협주곡 양식의 궁극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OoFb_iMKu5s


음악사의 바로크 시대에 벌어진 양상은 마치 춘추전국 시대의 군웅할거를 보는 듯합니다. 나라마다 도시마다 뛰어난 음악가들이 있었고 그들의 음악은 남다른 모습으로 나름의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때문에 같은 악기를 다르게 부르는 일도 있었는데 피아노의 전신 악기인 쳄발로가 그랬습니다. 이탈리아어로 쳄발로, 독일에서는 하프시코드, 프랑스 사람들은 클라브생이라 불렀던 겁니다. 먼저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과 도시들이 그렇게 경쟁하며 서로를 닮아갔고 그 때문에 나날이 변화하고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따라서 보고 배웠던 프랑스와 독일이 또한 같으면서 다르기도 한 그들만의 음악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물결은 헨델과 같은 작곡가와 더불어 섬나라 영국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바로크라면 우리는 바흐와 헨델, 비발디를 떠올리지만 이들은 모두 바로크 시대의 끝자락에 걸친 인물들입니다. 말하자면 한 시대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열어준 셈이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마지막 대업을 완성한 이가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때문에 그가 세상을 떠난 1750년은 150년 바로크 시대의 마지막 해로 삼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 이 놀라운 그의 업적 또한 중국의 역사에 비견하자면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운 진시황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여 말살한 시황제와는 달리 그는 스스로를 낮추어 상대를 받아들이고 배우면서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후대에 남겼습니다.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12EZZlr9DCY


비단 바흐뿐만 아니라 바로크 시대의 뛰어난 음악가들은 누구나 그랬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위대한 유산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와 다른 남을 존중하고 받아들여 그것으로 전보다 나은 나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음악 안에서도 전혀 다른 것들이 나란히 번갈아가며 나타나게 하여 서로가 겨루면서도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바로크 협주곡의 원리이자 바로크 음악의 가치, 바로크 시대의 정신입니다. 비발디의 조화의 영감” 10번의 1악장 들으면서 누구나 나와 다른 차이를 차별하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여 모두가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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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본 위대한 3B 음악가들(바흐, 베토벤, 브람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땅을 딛고 서서 하늘을 우러러본 위대한 3B 음악가들(바흐, 베토벤, 브람스)

Posted at 2017.06.04 19:0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음악사를 통 털어 가장 위대한 업적을 쌓은 세 사람의 독일 출신 작곡가라면 아무래도 바흐, 베토벤, 브람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사람 이름의 성이 모두 알파벳 B로 시작하는 까닭에 '3B'라 부르기도 합니다. 최초의 전업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가 처음 이 말을 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독일 출신의 작곡가라는 것 말고도 참 많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놀라운 능력과 업적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 뿐만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며 과연 어떻게 살아야할지 가늠하는 잣대로 삼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 나무위키

 

먼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살펴보면 하나같이 다 일찍 독립해서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꾸려나갔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과정을 통해 음악가, 예술가 이전에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스스로에게 맡겨진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어떤 난관과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집념, 근면과 성실로 불멸의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genie.co.kr/magazine/subMain?ctid=8&mgz_seq=3522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한 집안에서 태어난 바흐는 어려서 부모를 차례로 여의고 큰 형 집에 얹혀살았습니다. 그러나 빠듯한 살림에 조카들이 늘어나자 따로 나가 살 수밖에 없었고,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생계형 음악가의 길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찍 사촌인 마리아 바르바라와 결혼해서 열 세 자녀를 낳았고 부인을 사별한 후 재혼한 안나 막달레나와의 사이에서 일곱 자녀를 두었습니다. 무려 스물이나 되는 자녀들을 누구보다 잘 양육하고 교육하였기에 장남 빌헬름 프레데만과 차남 카를 필립 엠마누엘, 그리고 막내인 요한 크리스찬이 모두 한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로 음악사에 길이 그 이름이 빛나고 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대학도시 라이프치히에 정착하게 된 것도 성장한 자녀들의 교육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습니다.

 

이미지출처 : http://www.christianitytoday.com/history/people/musiciansartistsandwriters/johann-sebastian-bach.html

 

베토벤 역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처음 음악가의 길을 개척하여 크게 성공하였던 할아버지와 달리 아버지는 무능하고 심약했던 탓에 알콜 중독자로 살면서 가족들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괴롭히며 살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베토벤은 형제들을 감싸고 돌봤던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난 다음부터는 그 자신은 물론 두 동생까지 돌봐야했고 죽는 날까지 그 책임을 다하느라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말년에는 심신이 다 고갈되어 도저히 하루도 더 버틸 수 없는 지경이었는데도 형제들을 통 털어 유일한 혈육으로 남은 철부지 조카 카를의 앞날을 걱정하고 준비하느라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바쳤습니다.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지나치리만큼 절약했지만 그렇게 모은 돈은 고스란히 철부지 조카에게 유산으로 남겨졌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www.lifesitenews.com/opinion/the-problem-with-the-beethoven-argument

 

브람스의 아버지 또한 음악가였습니다. 콘트라베이스와 호른을 연주했으며 어린 브람스에게 음악의 기초를 가르쳤습니다.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버지 대신 14살부터 함부르크 항만의 허름한 여인숙에서 피아노를 치면서 가족들의 생계를 꾸렸으며 헝가리의 바이올리니스트 레메니의 반주자로 발탁되었고 이후에는 당대를 풍미했던 거장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의 반주자로 음악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렇게 사귄 요아힘과 평생 우정을 나누었고 슈만에게 브람스를 소개한 사람이 바로 요아힘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죽고 계모가 들어와 동생들이 늘었지만 가족을 돌보는 브람스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계모와 이복동생들까지 보살폈습니다. 무작정 믿고 전 재산을 맡긴 출판업자가 자신의 재산을 탕진해도 원망하는 법이 없었고 스스로는 검소하게 살면서 그렇게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여유까지도 늘 누군가에게 베풀었습니다. 슈만이 그에게 빛을 주었듯이 그 또한 드보르작을 비롯한 많은 후배 작곡가들에게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존경했던 스승의 부인이자 마음속으로 누구보다 깊이 사랑했던 클라라와 그 가족들을 죽을 때까지 돌보았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hefamouspeople.com/profiles/johannes-brahms-395.php

 

후대에 귀감이 되는 예술가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이들 세 작곡가 역시 모두 고귀하고 숭고한 가치와 신념을 가졌고 음악으로 그것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삶에서 진정 놀라운 것은 그들의 두 눈은 언제까지나 저 높은 곳의 별을 바라보며 두 손을 뻗어 끝내 닿으려 했으면서도 두 발은 늘 꿋꿋하게 땅을 딛고 서서 그들을 향해 몰아치는 세찬 바람을 조금도 피하지 않고 기꺼이 맞으며 이겨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가라면 곧 몽상가를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현실보다는 이상을 꿈꾸는 것이 예술이며 이상으로 현실을 이끄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 믿습니다. 그와는 반대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라고 생각하여 현실을 파고들어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깨닫도록 하는 것이 예술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술가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살다 보면 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과 갈등을 겪습니다. 현실은 이상을 용납하지 않고 이상은 현실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세 작곡가는 현실과 이상이라는 서로 상반된 두 세상을 다 아우르는 기적을 이루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 이상을 찾았고 이상으로 현실을 구했습니다. 이상이 있었기에 현실을 포기하지 않았고 현실이 거칠수록 이상은 더 높아만 갔습니다. 남다른 재능이 축복이자 저주인 것처럼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 또한 장벽이면서 또한 선물이기도 합니다. 고난을 이겨내느라 단련된 힘으로 누구보다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는 남다른 재능을 책임이라 생각하여 세상을 향한 축복으로 만들었고 그들에게 닥친 현실 또한 당연한 의무로 받아들여 위대한 선물을 우리에게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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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첼로의 역사를 새로 쓴 카잘스. 역사에서의 B.C의 의미는? 그럼 테너와 소프라노, 첼로리스트들에게 있어서 B.C의 의미는?[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첼로의 역사를 새로 쓴 카잘스. 역사에서의 B.C의 의미는? 그럼 테너와 소프라노, 첼로리스트들에게 있어서 B.C의 의미는?

Posted at 2016.01.20 10:0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역사에서 기원전을 뜻하는 B.C.는 예수 탄생 이전, 즉 Before Christ를 줄여서 만든 말이지요. 여기에 빗대서 테너들에게 B.C.는 Before Caruso라는 말이 있습니다. 소프라노들에게 있어서 B.C.라면 당연히 Before Callas라고 해야겠지요. 그만큼 엔리코 카루소와 마리아 칼라스는 독보적인 존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역사에서의 B.C는 예수 탄생 이전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음악의 다른 분야에서 이와 유사한 경우를 찾는다면 어떤 분야의 누구를 언급할 수 있을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파블로 카잘스를 첫 손가락에 꼽아야 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첼로에서 B.C.는 Before Casals인 셈이지요. 첼로의 역사는 카잘스 이전과 카잘스 이후가 있다고 할 만큼 그의 존재와 업적은 두드러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렇게까지 말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연주가 그만큼 뛰어나서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누구보다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첼로 연주자들의 레퍼토리 가운데 다른 어떤 작품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악보를 처음으로 발견하여 이 세상에 알렸고 또 평생을 바쳐 이 곡의 해석과 연주방법을 연구하여 후대에 남겼다는 것이 더욱 크게 평가받은 결과일 것입니다.

 

 

첼로에서의 B.C는 파블로 카잘스 탄생 이전을 의미합니다.

 

“무반주 첼로 모음곡” 뿐만 아니라 바흐가 남긴 작품과 그 영향은 음악의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절대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은 피아니스트들의 구약성서라 일컬어지고 있지요. 그러나 피아노의 경우 베토벤의 소나타 32곡을 신약성서라며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나란히 언급하고 있지만 첼리스트들에게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함께 놓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작품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위대한 걸작은 바흐가 죽고 백년이 훨씬 넘는 동안 그 존재조차도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엉뚱하게도 유럽의 중심에서 한참을 벗어난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헌책방에서 겨우 열세 살의 어린 소년 카잘스의 눈에 띄게 된 것이지요. 그것도 우연히 말입니다. 그 해가 바로 1899년이었으니 어떻게 보면 첼로의 원년은 1899년이라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첼로의 역사는 1899년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셈이지요.

 

Bach : Das Wohltemperierte Clavier I - Prelude & Fuga No.1 In C Major BWV 846 (01-02)

 

Rostropovich -- BACH (DVD Completo)

 

 

카잘스는 연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존경할 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영국의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힌은 카잘스를 회상하며 “그의 단순함과 우아함, 고결함으로 인해 인간 본성에 대한 믿음을 회복할 수 있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파블로 카잘스는 1876년 12월 29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엘 벤드렐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꽤 유명한 오르가니스트이자 합창 지휘자였지만 살림은 늘 궁핍하였습니다. 그러나 11명이나 되는 자녀들의 음악교육에 소흘함이 없었고 그것이 훗날 카잘스에게 긍지이자 자랑으로 기억되어 늘 “나의 음악적 재능은 전적으로 아버지에게 물려 받은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인 재능은 신이 내린 축복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노래와 건반악기를 배웠지만 바이올린과 첼로는 거의 스스로 터득하여 연주하였고 유랑악단과 어울려 엉터리 첼로를 곧잘 연주하는 아들에게 아버지 카를로스는 제대로 된 첼로를 사주었고 어머니는 그를 바르셀로나 시립 음악원에 입학시켜 정식으로 첼로를 배울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었지요.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날마다 카페 ‘토스트’에서 스스로 편곡한 곡들을 연주하였고 이를 지켜 본 작곡가 알베니스가 추천서를 써 주어 마드리드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렵 틈만 나면 들리곤 했던 헌책방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인쇄본을 발견하게 된 것이지요.

 

 

 

 

이후 연주자로서 그의 삶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스페인 왕실로부터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아 ‘카를로스 3세 훈장’을 받았고 유럽 각지는 물론 미국에까지 그 명성을 떨쳐 1904년 백악원 초청 연주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실내악에도 관심을 두어 1905년 바이올리니스트 자크 티보와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코르토와 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하였고 1915년 드디어 첫 음반작업을 하기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1936년부터 3년여에 걸쳐 드디어 오랜 세월 연구와 연습을 거듭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첫 음반을 녹음하여 세상에 내놓았고 이어서 녹음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과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은 지금까지도 그 해석에 있어 가장 권위있는 잣대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삶을 사는 가운데 1936년에 벌어진 스페인 내전과 1939년에 터진 제2차 세계대전은 너무나 큰 시련으로 다가왔습니다. 스페인 공화정을 지지했던 그는 1938년 10월 리체우 극장에서의 연주회를 스페인에서 쫓겨났고 죽을 때까지 다시는 조국의 땅을 밟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스스로의 신념과 양심을 지키기 위해 결코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너무나도 고향이 그리워 프랑스 남부, 스페인 국경과 맞닿아 있는 프라드에서 살았고 1950년부터는 이곳에서 페스티발을 열어 세계적인 거장들과 명연주자들을 수없이 불러들였지만 프랑코 독재정권이 지배하는 스페인으로부터의 초청은 단 한 번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몬트세라트 수도원에 있는 카잘스의 동상

 

그 뿐만 아니라 프랑코 정권을 인정하는 국가에서도 연주회를 갖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나치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코르토와도 절교를 했다가 1958년에야 다시 화해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신념과 고집으로 말미암아 미국에서의 연주도 거부했지만 그가 호감을 가졌던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1961년 다시 한 번 백악관 연주회를 가졌고 당시의 실황을 담은 음반은 시대의 유물로 남았습니다. 특히 앙코르로 연주한 카탈루냐의 민요인 ‘새의 노래’는 동포와 인류의 자유를 염원한 카잘스의 상징으로 남아 지금도 그를 존경하고 흠모하는 많은 첼리스트들이 앞다투어 연주하고 있지요.

 

Folklore Catalan : Εl Cant dels Ocells - Pablo Casals

카잘스의 1950년 프라데 페스티벌 연주

 

카잘스는 죽는 날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습했고 이것이 그에게는 날마다의 명상이자 기도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처음에는 기술적으로 연주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들도 하나 둘 극복하게 되었고 무엇보다 음악적인 해석에 있어 더할 나위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1973년 10월 22일 카잘스는 푸에르토 리코의 산 후안에서 수도자와도 같은 96년의 삶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얼마지 않아 그토록 그가 기다렸던 프랑코 정권의 종말이 찾아왔고 1979년에는 비록 시신으로나마 그의 고향 카탈루냐의 엘 벤드렐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다녀간 적이 있는 ‘베를린 필 12 첼리스트들’은 연주여행을 다닐 때마다 틈을 내서 벼룩시장의 중고음반 가게를 들린다고 합니다. 그렇게 찾은 오래된 무명 가수들의의 음반에서 좋은 곡을 찾으면 그것을 새롭게 편곡해서 연주회마다 들려준다고 하지요. 첼리스트들은 다 그런가봅니다. 첼리스트는 아니지만 저도 유럽의 대도시, 특히 파리를 방문할 때면 어김없이 벼룩시장을 찾습니다. 카잘스처럼 엄청난 보물을 찾는 요행을 바래서가 아니라 손 때 묻은 책 학 권, 빛 바랜 엽서 한 장을 버리지 않는 그들의 생각과 삶을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은 마음입니다. 딱히 벼룩시장을 찾지 않더라도 거리마다 사람마다 묵어서 은근한 멋을 풍기는 무엇인가를 걸치고 있어 흐뭇합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2첼리스트(출처 : 다음 블로그)

 

 좋은 것은 당장은 드러나지 않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진가를 발휘하는 법이지요. 클래식 음악이 바로 그렇습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그렇고 카잘스의 연주가 또한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 걸까요? 카잘스가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1.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근데 마지막 동영상은 카잘스가 아니라 마이스키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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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바흐의 마지막 작품. 아르슈타트과 뮐하우젠 시대, 바이마르 시대, 괴텐 시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만년의 걸작들을 만들었던 라이프치히 시대까지..[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바흐의 마지막 작품. 아르슈타트과 뮐하우젠 시대, 바이마르 시대, 괴텐 시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만년의 걸작들을 만들었던 라이프치히 시대까지..

Posted at 2015.10.28 08:57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바흐의 마지막 작품. 아르슈타트과 뮐하우젠 시대, 바이마르 시대, 괴텐 시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만년의 걸작들을 만들었던 라이프치히 시대까지...

 

바흐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작품은 “푸가의 기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5곡의 푸가와 4곡의 캐논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오늘날 대위의 모든 기법을 총망라한 전대미문의 역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서양음악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기법으로 대위와 화성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대위는 두 개 이상의 서로 다른 선율을 함께 만들어 가면서 서로 잘 어울릴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것이고 화성은 하나의 선율을 먼저 생각한 다음 그것과 가장 잘 어울릴 수 있는 다른 음들을 찾아서 채워나가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방법은 서로 별개가 아니고 음악을 만들 때 함께 고려해야 할 변수입니다.

 

 

푸가의 기법(독일어: Die Kunst der Fuge, BWV 1080)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작곡한 14곡의 푸가와 4곡의 카논으로 된 곡집이다.

 

 

바흐의 “푸가의 기법”은 15번째 푸가를 다 마치지 못하고 239마디에서 중단됩니다. 게다가 이 곡을 어떤 악기로 연주하라는 지시는 악보의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곡은 바흐가 죽고 한참이나 지난 1927년에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연주되었고 그 후로 지금까지 여러 악기들의 다양한 조합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바흐가 이 곡을 완성하지 못한 것은 안과 수술의 후유증으로 실명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흐 - 푸가의 기법 / 모로니

 

 

악기를 지시하지 못한 것을 두고는 특정 악기만을 반드시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설명도 있고 통상적으로 이럴 경우 건반악기를 위한 것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갑자기 작곡을 중단하였기에 미처 악기를 지시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겠지요.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엄격히 말해서 이 곡이 바흐의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떠나기 불과 며칠 전 바흐는 제자이자 사위였던 요한 크리스토프 알트니콜을 침대로 불러 그의 지시대로 악보에 적도록 시켰고 그렇게 완성한 곡이 “저 이제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Vor deinen Thron tret' ich hiermit)”라는 제목의 코랄 프렐류드였으니 이 곡이야말로 진정 바흐의 마지막 작품인 셈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연 때문에 오늘날 이 곡을 “임종의 코랄”이라 부르고 있고 “푸가의 기법”을 연주한 다음 이어서 이 곡을 연주하는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은 이렇듯 누군가에게 받아 적게 하여 곡을 쓸 수 있는데 왜 그토록 심혈을 기울였던 “푸가의 기법”을 같은 방법으로 완성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요? 그 해답은 그의 독실한 신앙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그가 그토록 많은 작품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있어 작곡을 한다는 것은 하늘이 주신 소명이었고 그 자신은 단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도록 명을 받든 한낱 피조물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눈이 보이지 않게 된 것도,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작곡을 중단할 수 밖에 없게 된 것도 모두 하늘의 뜻이니 그저 따를 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다만 임종의 순간에 완성한 마지막 곡은 그에게 주어진 소명 가운데 하나로서가 아니라 소임을 다하여 부르심을 받은 임무자가 올리는 보고였던 셈입니다. 그러니 어쩌면 눈이 멀어 병상에 누웠을 때 “푸가의 기법”을 완성하지 못하였음을 안타까워하기 보다 비로소 십자가를 내려놓게 되었음에 안도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아이제나흐 광장 서 있는 게오르크 교회는 아이제나흐 시 교회. 1182-1188년에 지어진 교회

 

아이제나흐의 성 게오르크 교회의 문서에 따르면 바흐는 1685년 3월 23일에 세례를 받았고 이를 근거로 그는 이틀 전인 3월 21일에 태어난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일곱 살에 성 게오르크 교회 부속 라틴어 학교에 입학했고 이 때부터 벌써 집안 살림에 보탬이 되려고 교회 성가대에 들어가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열 살에 아버지를 잃은 바흐는 오르가니스트인 맏형 요한 크리스토프를 따라 오르도르프로 이주합니다. 이 시절의 바흐는 당대 대가들의 작품 사보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 형의 악보를 몰래 빼내 밤새 필사하면서 음악 공부를 하였습니다. 오르도르프의 학교에서 라틴어와 루터 정통파 신학을 배웠고 형의 가족이 늘어나자 바흐는 1700년 봄에 북독일의 뤼네부르크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립합니다.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는 북독일 학파의 다채로운 음악을 접했고, 교회 오르간 연주의 대가 게오르크 뵘을 만났고 함부르크에서 북독일 오르간악파의 노대가 라인켄의 음악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웃 고장인 쩰레의 궁정악단 연주를 듣고 프랑스악파의 양식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바흐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음악가로서 취직을 해야만 했습니다. 처음엔 궁정악사로서 일하다가 자신이 진정으로 원했던 아른슈타트의 교회 오르간 연주자로 취임합니다. 이 직책은 오르간 연주뿐 아니라, 성가대를 훈련시켜야 했는데, 18세인 바흐는 젊은 대원들과 길거리에서 주먹으로 치고 받기도 했다는 일화가 남아있습니다. 늘 겸손하고 성실했던 바흐에게도 혈기 넘치던 젊은 시절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바흐의 음악인생은 그가 살았던 장소에 따라 대별됩니다. 즉 아르슈타트과 뮐하우젠 시대, 바이마르 시대, 괴텐 시대,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만년의 걸작들을 만들었던 라이프치히 시대입니다. 음악가로서 뿐만 아니라 가장으로서 또 아버지로서 충실한 삶을 살았던 바흐는 늘 부양해야 할 가족들에게 조금이라도 낳은 생활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 직장을 옮겼고 마지막으로 라이프치히를 택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장성한 자녀들의 대학교육을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처럼 어떤 경우에도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던 그의 삶으로 말미암아 그의 자녀들 또한 뛰어난 음악가로 성장하여 아버지의 업적과 명성을 이을 수 있었고 오늘날 기적이라 일컬을 만큼 놀라운 업적을 후대에 남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런 삶과 음악의 바탕에는 누구보다 깊고 든든한 신앙심이 받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작곡을 시작할 때 악보에 예수여 도와주소서(Jesu Juva)를 줄인 J.J. 혹은 예수의 이름으로(In Nomine Jesu)를 줄인 I.N.J.를 썼고 마지막엔 항상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대 Gloria)를 줄인 S.D.G.를 적었습니다. 그리고 늘 성경을 가까이 두고 읽었고 좋아하는 성경 구절에 “하나님께 드리는 음악이 있는 곳에 하느님은 항상 은혜로운 임재로 가까이 와 계신다”라고 주석을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반드시 기독교가 아니고 특정한 종교가 아니더라도 우리 삶의 모든 것을 섭리하는 무엇인가가 있어 그것을 거슬리지 않고 받아들이고 따라야 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정말이지 겨자씨만한 작은 믿음이라도 있다면 우리 가운데 누구도 스스로 교만하거나 나태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흐는 그 음악 이전에 그의 삶이 우리에게 무한한 감동과 교훈을 주는 위대한 인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만의 버켓리스트에는 바흐순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가 태어난 아이제나흐에서 시작하여 그가 성장한 오르도르프와 뤼네부르크를 지나 아른슈타트와 뮐하우젠, 바이마르와 괴텐을 거쳐 라이프치히에서 마치게 될 이 여정을 통해 그의 삶의 자취와 향기를 좀 더 가까이 느껴볼 생각입니다. 혹시 이 순례에 동참하시겠다면 기꺼이 동행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바흐순례에 초대합니다.

 

 

Bach: Easter Oratorio (Sir John Eliot Gardiner ,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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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사 최고의 기적,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비밀] 천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한 시냇물(Bach). 음악사의 가장 놀라운 기적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음악사 최고의 기적,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비밀] 천곡이 넘는 음악을 작곡한 시냇물(Bach). 음악사의 가장 놀라운 기적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Posted at 2015.04.28 13:5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작곡가 바그너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를 일컬어 음악사를 통 털어 가장 놀라운 기적이라 했습니다. 그만큼 그가 남긴 업적과 후대에 미친 영향이 크기에 아무도 그와 견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것이 너무나 크고 높아 도저히 한 사람이 이루어낸 것이라고 믿기 힘들다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장 그가 남긴 작품의 수와 양만 놓고 보더라도 이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독일어로 ‘바흐(Bach)'는 ‘시냇물’이라는 뜻이 되기도 하는데, 이를 두고 베토벤은 “시냇물(Bach)이 아니라 바다(Meer)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흐협회(Bach Gesellschaft)가 그가 남긴 작품을 모아 60권으로 출판하기까지 46년이 걸렸고 그렇게 정리된 작품의 수만 헤아려도 천곡이 넘지만 버려지고 잊혀져서 찾을 수 없는 작품들이 얼마인지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으니 실제로 그가 작곡한 작품의 수와 양을 추정한다면 실로 이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현존하는 모든 종교음악들 가운데 최고로 일컬어지고 있는 마테수난곡은 작곡가 멘델스존에게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그로 말미암아 바흐의 존재도 함께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껏 첼로를 위해 만들어진 모든 곡들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첼로모음곡도 첼레스트 카잘스가 찾아내기 전에는 이 세상에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또 우리가 모르는 채 어딘가에 묻혀 있을 바흐의 위대한 업적이 얼마나 더 많을 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새롭고 혁신적인 바흐의 마태 수난곡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그의 기적이 더욱 놀라운 것은 작곡은 바흐에게 부여된 일상적인 업무 가운데 일부였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오르간과 다른 악기를 연주하고 성가대와 악단을 지휘해야 했으며 그와 관련된 연습은 물론 행정도 맡아야 했습니다. 또한 그는 학생들도 가르쳐야 했는데 음악만이 아니라 라틴어까지도 그의 몫이었습니다. 이런 사정이니 작곡은 일터에서 집으로 돌아온 다음에야 가능했을 테고 날마다 촛불 아래서 밤을 지새워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50이 넘어 바흐는 백내장을 앓았고 수술의 후유증으로 실명을 했는가 하면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대를 살며 함께 그 시대를 대표했던 헨델도 비슷한 시기에 백내장을 앓았다는 것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모두 존 테일러라는 영국 의사에게서 시술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실명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

 

이토록 놀라운 바흐의 기적이 가능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재능과 능력이 누구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먼저이고 아무와도 비교할 수 없는 근면과 성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유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적을 만든 재능과 능력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그리고 초인적인 인내로 버틴 근면하고 성실한 삶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이번 시간에는 첫 번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로 하고 두 번째 질문에 대한 해답은 다음 시간에 밝혀보기로 하겠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바흐의 업적을 가능하게 한 재능의 뿌리는 그의 혈통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습니다. 그의 가문은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가업을 중시하던 당시의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무척이나 드문 경우이기에 오늘날에도 학자들의 연구 대상으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가계의 6대를 통틀어 음악가가가 아닌 사람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정도이니 놀랍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제과업자이면서 치터(Zither:현악기의 일종)를 연주했던 파이트 바흐 이후, 중부 독일의 튀링겐 지방에서 바흐 가문은 뿌리를 내렸습니다.

 

 

Zither - 출처 : Wikipedia

 

가족들은 모두 루터 정통파의 경건한 신자였습니다. 파이트 바흐의 장남이자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증조부인 요하네스는 바이마르 거리 악사로서 그 이름은 이웃 고장에까지 전해 졌습니다. 그의 장남인 요한은 바흐 가문 최초의 작곡가로서 알려져 있고, 3곡의 작품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요한의 동생 크리스토프가 바흐의 조부로서, 악사로 활약했으며, 동생인 하인리히의 칸타타 한 곡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하인리히의 장남 요한 크리스토프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로서, 작곡가로서도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의 동생 미하엘도 음악가였으며, 그의 막내딸 마리아 바르바라는 훗날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첫 아내가 됩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조부 크리스토프는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장남 게오르크 크리스토프는 바흐 집안에서 처음으로 칸토르(교회 합창단장)라는 높은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 동생 요한 크리스토프와 요한 암브로지우스는 일란성 쌍생아로서 모두 악사가 되었습니다. 이 암브로지우스의 막내아들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입니다.

 

 

요한 제바스티안에게는 20명의 자녀가 있었는데, 첫 번째 부인 마리아 바르바라에게서 일곱을 낳았고 상처하고 재혼한 두 번째 부인 안나 막달레나에게서 13명을 얻었습니다. 그 가운데 절반을 어려서 잃었고 나머지 대부분이 음악가로 성장하였지만 그 중에서도 장남인 빌헬름 프리데만(1710~1784), 차남 카를 필립 에마누엘(1714~1788), 막내 요한 크리스티안(1735~1782)의 3명은 음악사에 찬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특히 에마누엘과 크리스티안은 전자가 '함부르크의 바흐', '베를린의 바흐', 후자가 '밀라노의 바흐', '런던의 바흐'로 일컬어질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약하고 아버지 바흐가 집대성한 바로크음악의 업적을 하이든과 모차르트가 계승하여 고전주의 시대를 열 수 있도록 커다란 역할을 하였습니다.

 

 

함께 연주하는 바흐 가족의 모습 - 출처 : http://classroom.re.kr/ 

 

신약성서 마태복음을 열면 가장 먼저 아브라함에서 시작하여 예수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족보를 하나도 빠짐없이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뜻조차 누대에 걸쳐 끊이지 않고 이어지며 전해지고 난 다음에야 마침내 이 땅에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하물며 사람의 일이야 달리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앞선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운데 무엇을 잘 닦고 가다듬어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그런 고민과 노력이 오랜 세월 거듭된 다음에야 우리도 바흐와 같은 기적을 낳을 수 있을 것입니다. 태양계 밖의 미지의 세계에 인류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주 탐사선 보이저 2호에 실린 바흐의 음악들 가운데 한 곡이지요.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의 1악장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Brandenburg Concerto NO 2 in F Major, BWV 1047

 

2012. 5. 24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The Great 3B series-Bach 2012"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제2번 F장조 BWV 1047

리더ㅣ김 민
연주ㅣ서울바로크합주단
지휘&챔발로ㅣ조리 비니커
바이올린ㅣ윤경희, 김성혜
플루트ㅣ필립 베르놀드
오보에ㅣ이현옥, 김소연, 송영현
바순ㅣ김희성
트럼펫ㅣ알레스 크랜카, 성재창, 박기범
팀파니ㅣ박보형
챔발로ㅣ조리 비니커, 오주희

 

 

  1. 김에송
    와.. 역시 바흐는 정말 대단하네요~

    바흐가 시냇물이 라는 뜻도 된다는건 처음 알았네요 ㅋㅋㅋ
  2. 심은선
    바흐의 시대의 음악 사조를 알아보다 이곳 까지 오게 되었어요. 재밌고 유익한 글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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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소개] piano lied[음반소개] piano lied

Posted at 2013.12.26 09:00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이 음반의 느낌이 참 좋습니다. 자켓의 그림은 비행기 타고 하늘위로 올라가 내려다 본 구름인 것 같고,

이런 구름을 보고 있는 듯한 고요한 느낌이 앨범 전체를 감쌉니다.

저는 이 앨범의 3가지를 주목했는데요. 연주, 곡(편곡), 음질입니다.

연주는 말 할 것도 없이 아주 좋습니다. 세계적인 연주자를 비웃기라도 하듯한 아주 훌륭하구요.

곡은 익숙히 많이 들어 본 직한 곡에다 편곡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위화감 전혀 없이 이게

정말 편곡을 한 것인가 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음질. 오디오가이레이블의 음질은

당연 좋겠지만, 10주년 기념으로 HQCD입니다. 연주자와 곡이 좋은 걸 아주 잘 받쳐 준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렇게 말을 많이 써도 부클릿에 있는 레코딩노트를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옮겨 적습니다.

 

강신태라는 피아니스트는 아주 독특한 페달링과 터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 오디오가이 레코드에서 발매한

"JUXTAPOSITION(2008)" 음반의 녹음 작업때 처음 그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레코딩 프로듀서이자 엔지니어로서 정말 무수한 피아니스트를과 함께 음반 작업을 해보았지만,

이것은 내가 그동안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피아노 소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음반에서는 각 곡마다 미묘하게 피아노의 음색이 다르게 들립니다. 음색의 이러한 변화는, 녹음의 세팅이나

프로세서를 달리하여 인위적으로 소리를 가공한 탓이 아닌, 감성이 담긴 손 끝이 공기를 가르며 피아노의 건반으로

떨어지는 그 순간의 터치 그리고 지극히 섬세하고 세심한 페달링만을 이용해 피아니스트 자신이 직접 만들어낸

것입니다. 녹음 장소였던 장천아트홀은 넓은 공간에 비해 그리 울림이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음반에는

아주 풍부한 울림의 피아노 사운드가 담겨있습ㄴ다. 세심한 페달링으로 오른손의 중요한 음 하나하나에만

서스테인 페달이 동작, 왼손에서의 표현은 따뜻하며 음의 여음이 깔끔하게 떨어지도록 피아니스트가 소리를

컨트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직 마이크만을 통해 담아낸 지극히 순수한 피아노 소리로,

컴프레서나 리버브 등이 전혀 사용되지 않은 소리입니다.

 

피아노에 앉아 있는 아티스트를 바로 정면에서 바라보는 듯한 이 시선은, 또 하나의 예술가적 감성을 지닌 두 개의

마이크, 그리고 홀 무대 내부의 울림을 담기 위한 다른 두 개의 마이크가 서로 믹스되어 이루어낸 것입니다.

이 마이크들을 통한 소리가 레코더에 담기고, 담기 소리는 스피커라는 물리적 변환기를 통해 다시 공기를 움직여

우리의 귀로 전달이 됩니다. 이것은 마치, 내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홀로 연주하는 소리를

무대 바로 뒤의 음향조정실에서 듣는 것과도 같은, 무대와 조정실을 이어주는 작은 문을 반쯤 열어두고서 목소리를

낮추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귀 기울여 듣는 것과 흡사한, 바로 그런 느낌입니다.

'나의 음악과 소리를 들어야 한다' 고 강요 받는 것이 아닌, 자연스레 열린 문틈 너머로 듣게 되는 이 아련한 느낌.

이러한 녹음 당시의 느낌을 이 음반에 담아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아티스트가 연주한 음악의 감정, 음 하나하나에

담긴 그 마음이 이 음반을 통해서 여러분께 전달 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01. 음 꽃으로 물드는 테라스 -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 중에서 "꽃의 이중창"

02. 쪽빛 바다 요람 -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중에서 "허밍코러스"

03. 오래된 자장가 - 한창욱의 '포구에서' 중에서 "섬 집 아기"

04. 춤추는 피아노 - 드뷔시의 '작은 모음곡' 중에서 "조각배"

05. 아지랑이 - 슈베르트 연가극 '겨울나그네' 중에서 "봄 꽃"

06. 달님 몰래, 음 별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 어린 요정의 담요 속 - 모짜르트의 '플루트,바이올린,비올라 그리고 첼로를

위한 4중주' 중에서 "아다지오"KV. 285

07. 하프 소리가 나는 피아노 - 마스카니의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중에서 "간주곡"

08. 마음 연못 - 한창욱의 '포구에서' 중에서 "나뭇잎 배"

09. 지난 겨울 이야기 - 비발디의 '사계' 중에서 "겨울 - 라르고"

10. 노래하는 별 꽃 - 보로딘의 '현악 4중주' 중에서 "녹턴"

11. 별의 목소리 - 슈베르트의 가곡 '밤과 꿈'

12. 라르고 흔들의자 - 알비노니의 '오보에와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중에서 "라르고"

13. 사람의 삼원색 - 바흐의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 중에서 "라르고"

slow, sleeping, spirit, pianism 이라고 부크릿이 시작되는데요. 공감이 갑니다.

또하난의 애정(청) 음반이 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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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회 이건음악회 - 시몬 디너스틴(Simone Dinnerstein) 공연 티켓응모 이벤트 -시모나 디너스틴 무료 공연 티켓 신청하기24회 이건음악회 - 시몬 디너스틴(Simone Dinnerstein) 공연 티켓응모 이벤트 -시모나 디너스틴 무료 공연 티켓 신청하기

Posted at 2013.09.25 11:2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 빌보드 클래식 차트 1위


▶ 뉴욕타임즈, LA타임즈, 뉴요커지 선정 2007년 최고의 앨범


매혹적인 생생함과 신비감..! - Time

투명하고 정직한, 소박한 우아함... - The New Yorker  

사려깊은 열정이 빛나는, 내면의 바흐! - The Washington Post


▶ 2011년 빌보드 클래식 차트 최다 판매 앨범 


▶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 선정 2011년 가장 좋은 노래 100선 선정


▶ 아마존닷컴 클래식 씨디 판매 1위



시몬 디너스틴(Simone Dinnerstein)을 설명하는 멋진 문구들이 많습니다. 여러 곳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연주자라는 공통점이 있지요.  이렇게 세계적인 연주자가 올 가을 한국에서 처음 연주회를 갖습니다. 



바로 제24회 이건음악회를 통해서 말이죠 ^^



 

이건그룹은 1990년 부터 매년 가을,  문화 나눔을 통한 사회공헌활동으로 이건음악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2012년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브라스 앙상블 초청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그 열기를 이어 올 해는 바흐 전문가 시몬 디너스틴이 감미로운 선율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시몬 디너스틴의 피아노 연주 들어보기  - J.S. Bach 골드베르크 변주곡




Simone Dinnerstein - J.S. Bach : Goldberg Variations BWV 988 - Track 01. Aria


플레이어1




 플레이어2



(위 곡은 시몬 디너스틴과 음반사로 부터 사용 허가를 받은 곡임을 알려드립니다.)



이건음악회는 누구나 함께 하실 수 있는 무료 공연입니다. 다만, 공연장 좌석이 한정되어 있어 원하시는 모든 분들께 티켓을 드릴 수 없기에, 음악회를 들어야 하는 사연, 음악회를 듣고 싶은 이유 등의 사연을 신청하여 당첨되신 분들께 티켓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9월 25일(수) ~ 10월 9일(수) 까지 24회 이건음악회 - 시몬 디너스틴 초청연주회 무료 티켓응모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  이건음악회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의 내용 참조하시어 신청 부탁드리겠습니다.









 

■ 이벤트 종료 안내

 

이벤트  기간 종료로 인하여 전 공연장 마감되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참고★


1. 티켓신청 그림 클릭이 안되시는 분은 아래의 주소를 클릭 또는 복사하여 인터넷 주소창에 붙여 넣으시면 됩니다. 

2. 티켓신청 그림을 클릭하거나, 주소를 넣어도 티켓신청팝업이 뜨지 않으시는 분은 [팝업차단 설정 해제]를 해주세요. 방법은 인터넷익스플로러 기준으로, 도구→팝업 차단→팝업차단 사용 안함 클릭 하시면 됩니다.


3. 기타 문의사항은 리플로 부탁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1. 이전 댓글 더보기
  2. 비밀댓글입니다
  3. 비밀댓글입니다
  4.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2 17:14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당첨 축하드립니다.

      "김봉원"님은
      2013년 10월26일(토요일) 20시에 있는 예술의전당(2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김태희"님도
      2013년 10월26일(토요일) 20시에 있는 예술의전당(2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문현정"님 역시
      2013년 10월26일(토요일) 20시에 있는 예술의전당(2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동반1인 포함 총 2인 가능하십니다.

      차후에 문자로 세부 메세지가 갈 예정입니다.

      좋은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5.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2 17:11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당첨 축하드립니다.

      "이승민"님은
      2013년 10월26일(토요일) 14시30분에 있는 예술의전당(1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동반1인 포함 총 2인 가능하십니다.

      예술의 전당의 경우는 낮, 저녁 시간의 좌석이 모두 만석이라 시간대 변경은 힘이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확인해 보고 변경이 가능하다면 따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6. 조수란
    당첨문자 받았는데요. 광주는 공연장소 일시가 어떻게 되나요?
  7.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3 09:40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당첨 축하드립니다.

      "한희주"님은
      2013년 10월26일(토요일) 14시30분에 있는 예술의전당(1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동반1인 포함 총 2인 가능하십니다.
      초등학생 아이도 가능합니다. ^^

      예술의 전당의 경우는 낮, 저녁 시간의 좌석이 모두 만석이라 시간대 변경은 힘이들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첨되신 분들 간의 교환은 가능하지만,
      저희 쪽에서 시간 변경은 불가능합니다.

      좋은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8.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3 11:45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당첨 축하드립니다.

      "박대기"님은
      2013년 10월26일(토요일) 20시에 있는 예술의전당(2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동반1인 포함 총 2인 가능하십니다.

      좋은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9.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4 08:56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당첨 축하드립니다.

      "이윤호"님은
      2013년 10월26일(토요일) 20시에 있는 예술의전당(2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동반1인 포함 총 2인 가능하십니다.

      좋은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10. 정은화
    저는 토욜 1차 당첨 되었는데요 저녁 시간과 교환하실 분 안계실 까요???
    연락 주십시요 eunhwa58@naver.com
  11. 비밀댓글입니다
  12. 비밀댓글입니다
  13.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4 17:14 신고 [Edit/Del]
      현재 아래의 사이트에서 부산과 광주 공연을 선착순으로 티켓배포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 이외의 지역은 벌써 만석이라 힘들 것 같습니다.

      좋은 일이 항상 함께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http://eagonblog.com/634
  14. 허철
    허철 010-3002-6195입니다. 26일 몇시 거 당첨되었는지 확인 부탁 드립니다.
    • 2013.10.25 10:02 신고 [Edit/Del]
      안녕하세요.
      당첨 축하드립니다.

      "허철"님은
      2013년 10월26일(토요일) 14시30분에 있는 예술의전당(1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동반1인 포함 총 2인 가능하십니다.

      좋은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


  15. 김정현
    이런 좋은 음악회를 이제야 알게되었네요 ㅠㅠ
    혹시 26일 저녁8시음악회 사정이생겨 못가게 되신분 계시면 양도 해주실수 있을까요?^^01099401532
  16. 비밀댓글입니다
  17.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5 22:48 신고 [Edit/Del]
      좌석은 초대권을 받으신 분들 모두의 숫자만큼 있습니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자리를 선택하실 수 없다는 것 입니다.
      우선 방문하시는 분께 최대한 좋은 자리를 드리려고 합니다.

      무료 공연이라는 장점이자 단점이 있기에 방문객들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드리고자 시행한 방법입니다.

      걱정 마시고, 초대권을 받으셨으면 즐거운 마음으로 찾아주셔서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초대권=좌석 입니다. 다만, 지정좌석이 아닐 뿐 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
  18. 김영미
    혹시 오늘 일산 표나 담주 수요일표인천 2장 구할수 없을까요?
  19. gwaksg
    너무 너무가고싶은 피아노를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혹시 사정이생겨서 양도하실분 답글남겨주세요ㅜㅜ
  20. 비밀댓글입니다
  21. kitbal
    안녕하세요.
    30일 인천 티켓 구하고 싶습니다.
    010-2650-4157 로 연락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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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4회 이건음악회 - 시몬 디너스틴 초청 연주회 안내 (Simone Dinnerstein, 시모나 디너스틴 골드베르크 변주곡)제 24회 이건음악회 - 시몬 디너스틴 초청 연주회 안내 (Simone Dinnerstein, 시모나 디너스틴 골드베르크 변주곡)

Posted at 2013.09.12 12:2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이제는 진정, 가을이 왔음이 느껴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가 되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저는... 이건음악회 생각을 합니다. ^_^ 

 

가을 밤에 듣는 클래식 콘서트... 생각만해도 로맨틱하지 않습니까?

 

작년 베를린필 브라스 앙상블 공연 때는 연주자 스케쥴과 여러 사정 때문에 여름에 했지만, 올 해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늦은 10월 가을 정취가 한창 일 때, 이건음악회가 여러분을 찾아 뵙습니다.

 

24회 이건음악회의 연주자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시몬 디너스틴(Simone Dinnerstein)입니다간단한 소개는 지난 번 글에 소개를 드렸는데요,

 

 

2013/09/05 -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 제24회 이건음악회 안내 - 시몬 디너스틴 초청 연주회(시모나 디너스테인)

 

 

'시몬 디너스틴'은 바흐스페셜리스트로서 2007년 ‘바흐의 골든베르크 변주곡’을 그녀만의 개성 있는 표현력으로 재해석해 미국 빌보드 클래시컬 차트 1위를 차지한 실력파 연주자 입니다.

 

이번 24회 이건음악회에서는 그녀가 선사하는 바흐의 부드럽고 생기 있는 음악을 통해 한층 성숙해진 이건음악회를 만나보실 수 있을 것이라 자부합니다.

 

 

이건음악회 제24회 포스터입니다.

 

 

 

이건음악회 프로그램은 시몬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연주인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입니다.

 

 

 

총 6회 공연이며, 공연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


1025일 고양 아람누리 아람음악당

10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14:30, 20:00 2회 공연)

10 29일 광주 문화예술회관

10월 30일 인천 종합문화예술회관 

11 02일 부산 문화회관

 

이건음악회 티켓 신청은 이건음악회 블로그(www.eagonblog.com)와 이건그룹 홈페이지(www.eagon.com)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신청 방식은 원하시는 공연장을 선택하시어, 사연과 함께 응모하시면, 추첨을 통하여 1인당 2매씩 음악회 티켓을 우편으로 발송해드리고 있습니다.

 

신청 기간은 9월 25일 부터 ~ 10월 9일 까지 약 2주 동안이오니, ^^ 응모 기간 꼭 확인하셔서 멋진 사연과 함께 응모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건음악회와 관련하여 궁금하신 사항 있으시면, 리플을 통해 질문해주시면 ^^ 답변드리겠습니다.

 

항상 이건음악회와 이건그룹에 관심 갖어 주시어 감사드립니다.

 

 

 

 

 

 

 

 

 

 


  1. 비밀댓글입니다
  2. 이윤경
    와우~~~,!!!!!! 전 왜!!!! 이런 고급스러운 소식을 이제야 알게 된걸까요!!!!!! 진정 꼭!!! 신청할거예요 ^^
  3. 노환
    우와 빨리 25일 되길
    달력에 표시 해놨습니다. ^^
  4. 박상은

    음악공부도 시켜주고 또 음악공연도 보여주는 좋은 기업이네요. :D
  5. 비밀댓글입니다
  6. 사이다
    29일 광주문예회관 당첨되었는데요
    공연시간이 어떻게 되는지요~
    같이갈사람과 시간조율을 해야되서요~
  7. 비밀댓글입니다
    • 2013.10.22 15:06 신고 [Edit/Del]
      당첨 축하드립니다.

      "지승연"님 께서는
      예술의 전당(1차) 공연에 당첨되셨습니다.
      예술의 전당(1차)의 공연시간은 10월26일(토요일) 14시30분입니다.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8. 엉데드
    일이 생겨 못가게 될수도 있을거 같은데요
    지인에게 선물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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