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구레츠키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Posted at 2017.03.23 08:3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클래식 톡톡



현대음악은 말 그대로 우리가 살고 있는 동시대에 만들어진 음악일 따름입니다. 그런데 대게는 20세기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작곡가들이 모색하여 시도하고 있는 새롭고 실험적인 음악들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등장해서 유명해진 존 케이지의 “433란 곡은 아시다시피 433초간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는 곡입니다



악기에서 나는 소리만이 음악이 아니라 청중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는 물론 침묵의 순간 흐르는 시간 그 자체도 음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곡에서는 악기를 부수거나 완전히 해체하는 것이 음악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너무나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것을 현대음악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조차 현대음악에는 별로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 때문에 연주회를 통해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을 뿐더러 음반으로 만들어지는 일은 더더욱 드뭅니다. 그런데 1991년 이런 통념과 편견을 깨는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폴란드의 대표적인 현대음악 작곡가 헨릭 구레츠키(Henryk Gorecki)의 교향곡 3번을 녹음한 음반이 빌보드 차트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 31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것입니다. 이 음반은 순식간에 100만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리면서 현대음악으로선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관심과 호응을 이끌어냈습니다.





폴란드를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인 구레츠키는 단순하면서 보편적인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 음악을 추구했고 이 작품 또한 그의 생각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슬픔의 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곡은 오래 전부터 폴란드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카톨릭 교회의 성가와 민요의 가사와 선율을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향곡이라고 하지만 3개의 악장 모두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가사의 단어와 구절을 찬찬히 읽다 보면 이 작품의 매력은 음악보다 오히려 가사에 담긴 내용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그리고 얼핏 구레츠키가 추구한 보편적인 설득력이 슬픔이라는 정서에 모아지면서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됩니다.


Henryk Górecki


 

1악장의 가사는 폴란드의 수도원에 전해지고 있는 성십자가 탄식 기도문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나의 아들,

내 몸에서 태어난 사랑하는 아들아

너의 상처를 나에게 나누어 다오.

언제나 내 마음 속에 너를 품고 있었던,

진심으로 너를 돌보았던 어미에게

너의 목소리라도 들려주어 기쁘게 해다오.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어머니 마리아의 기막힌 심정이 절절히 녹아 있는 곡이죠. 세상의 어머니들이라면 가슴이 먹먹하게 듣게 되는 곡입니다.

 



다음 2악장은 2차 세계대전의 악명 높은 수용소 아우슈비츠에 갇혔던 18세의 유태인 소녀가 가스실로 끌려가기 전에 남아 있는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벽에 쓴 낙서를 가사로 삼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먼저 떠나가지만 엄마 울지 마세요.

고결하신 성처녀 아베 마리아여 저를 도와주소서.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카토비체에서 공부를 하고 그곳 국립음악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구레츠키는 아마도 이 역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커다란 충격과 슬픔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악장은 폴란드의 또 다른 역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독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와 같은 강대국들로부터 끊임없이 침략을 당했던 폴란드는 숱한 전쟁에서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젊은 목숨들이 희생당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3악장에선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슬픔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어디로 갔는가 내 사랑하는 아들은?

전란이 일어났을 때 내 아들은 잔인한 적에게 죽임을 당했겠지

, 너 몸쓸 인간아 가장 성스러운 신의 이름으로 나에게 말해다오,

왜 내 아들을 죽였는지

이제 다시는 아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없으니

내가 울고 울어 내 늙은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강을 만들어도

그들은 내 아들을 살리지 못하리라

 


그렇습니다. 국경을 넘고 인종을 초월해서 모든 인간의 마을을 움직이는 감정은 슬픔입니다. 그리고 그 슬픔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면 누가 뭐래도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슬픔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공감하여 마음을 주었던 것입니다.




작곡가 구레츠키는 어느 인터뷰에서 슬픔은 형벌이자 동시에 축복이라고 했습니다. 슬픔은 오리가 인생을 살아가며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인생의 일부로서 숙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존재가 아닌가 합니다. 지나간 슬픔들, 그리고 앞으로 부딪혀야 할 또 많은 아픔과 슬픔들을 구레츠키의 슬픔의 노래로 그랬듯이 우리 또한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축복으로 받아들여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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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21세기 오페라의 흐름을 바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21세기 오페라의 흐름을 바꾼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

Posted at 2016.12.21 11:33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지난 312, 우리나라 오페라 애호가들 그토록 기다렸던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내한 연주회가 있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 이후 안나 네트렙코만큼 주목받았던 소프라노가 있었나 싶습니다. 노래와 연기, 외모까지 모두 다 가졌으니 이 보다 더 좋을 순 없고 타고난 끼와 재능에다 재치와 순발력까지 갖추고도 그 의욕과 열정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미모라면 일찍이 그 이름이 같은 안나 모포가 있었지만 노래와 연기, 무엇보다 성량이 전혀 비교할 바가 아니었고, 노래는 물론 연기만으로도 감동을 준 세기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는 평생 외모에 대한 컴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출산을 하고 다시 나타난 지금은 불어난 몸매가 아쉽기도 하고 소리의 탄력도 예전만은 못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안나 네트렙코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디바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안나 네트렙코의 존재가 지금처럼 지구촌 구석구석까지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초반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 초청되어 도밍고가 발굴한 테너 롤란드 비야존과 몇차례 호흡을 맞추면서부터입니다.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에서 청순하지만 적극적인 성격의 시골처녀 아디나를 완벽하게 소화했고 베르디의 "트라비아타"에서는 무채색의 무대를 배경으로 새빨간 원피스를 입고 나와관능적이면서 가련하기까지 한 화류계 여인 비올레타의 강렬한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켰습니다.






서구의 언론들은 하나같이 팔방미인 소프라노의 출현을 반기면서 호들갑을 떨었고 "마린스키 극장에서 청소부로 일하던 한 소녀가 우연히 마에스트로 게르기에프의 눈에 띄어 일약 스타가 되었다"는 신데렐라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마린스키 극장에서 청소 아르바이트를 한 것도 사실이고 게르기에프에게 발탁되어 오페라 무대에 선 것도 사실이지만 청소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자주, 또 가까이서 오페라를 만드는 현장을 보고싶은 열망에서 택한 일이었고 게르기에프와 처음 호흡을 맞춘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은 1993년 글린카 콩쿠르에서 우승한 다음 해의 일이었습니다.




네트렙코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크게 성공한 예술가들이 흔히 그런 것처럼 그 역시 어린 나이에 가수가 되려는 꿈을 품었고 피나는 노력으로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어 마침내 성공에 이르렀을 것이라 짐작하겠지만 정작 그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971918일 흑해 연안의 러시아 도시 크라스노다르에서 지질학자인 아버지와 통신기술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발레와 체조, 농구를 배워 수준급의 실력을 갖출 수 있었고 연극 "오셀로"를 본 이후로는 한 동안 연극 무대를 동경한 연기자 지망생이었습니다. 당연히 연극 학교에 들어가려 했지만 입학이 어려울 거라는 주변의 만류로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 전문대로 방향을 틀었고 일년 만에 그 보다 더 높은 수준의 림스키코르사코프 콘서바토리에 편입했습니다. 연기자의 꿈을 접고 택한 성악가의 길에서 재능을 발견하여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정작 그 자신은 가수가 되지 못했다면 화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집안에 집시의 피가 흘러 언제나 지금과 다른 삶을 꿈꾸며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아닌게 아니라 네트렙코는 데뷔 이후 지금까지 줄곧 새로운 영역과 역할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산으로 잠시 공백기가 있었지만 이후 다시 나타나서는 전보다 한층 더 진지하고 성숙한 역할에 몰입하여 묵직하고 뭉클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특히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에서 네트렙코는 헨리 8세에게 버림받는 비운의 여인 앤 볼린의 참담한 심정을 너무나도 잘 소화해서 최고의 열연으로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네트렙코에 열광하는 세태를 비판하는 이들은 사람들이 빼어난 외모와 도발적인 무대 매너에 현혹되어 정작 부족한 기본기를 간과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말대로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같이 콜로라투라의 기교가 필요한 역할에서 칼라스와 그루베로바를 비교한다면 아쉬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의 영역에서라면 누군가 한 사람이 모든 작품의 모든 역할을 다른 누구보다 잘한다는 건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더러는 그가 명품 광고에 자주 등장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기도 하고 동거와 결별, 결혼과 이혼에 이은 재혼까지 문제삼는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소위 말하는 유명 연예인들의 그렇고 그런 행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오페라 가수, 예술가의 품격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사람들 중에는 그가 비인에서 살면서 오스트리아 국적을 취득한 사실에 분개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싫든 좋든 세상은 달라지고 있습니다. 인공 지능이 인류의 미래를 열어가는 시대입니다. 연예인과 예술가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고 결혼이든 국적이든 개인의 선택을 두고 다른 누군가가 이렇고 저렇고 따지던 시대는 이미 아주 먼 옛날입니다. 네트렙코의 말대로 그 자신 변신을 거듭하다 무엇을 선택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니 언니처럼 모델로 나설지도 모르는 일이고 연기자로 나서거나 그림을 그릴 수도 있습니다. 틀림 없는 사실은 세상 사람들이 뭐라 하든 네트렙코는 자신이 원하는 하루 하루의 삶을 마치 그날이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스스로를 던져 만들어갈 것이며 언제나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그 가지를 사방으로 멀리 뻗을수록 줄기는 더욱 단단해져 그를 있게 한 러시아의 흙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릴 것입니다. 사회주의 소비에트 시절을 살면서 엘리트 교육의 혜택을 누렸으니 그 때를 결코 잊지는 못할 것입니다. 21세기의 카라얀을 꿈꾸는 러시아 음악계의 차르(황제) 게르기에프의 간택을 받았으니 그 또한 숙명입니다




라틴 혈통의 다정다감한 바리톤 가수 두 남자와 살다가 헤어져서 지금의 남편인 테너 유시프 에이바조프와 결혼한 것도 어쩌면 러시아어가 아니면 서로 통할 수 없는 그 무엇이 간절했는지도 모릅니다. 이미 생각보다 너무 먼 바다로 나왔으니 어느덧 지난 날이 그립고 살던 곳이 그립겠지만 누구든 한 번 시작한 시간의 항해는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며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사람이지만 이미 시작된 변화를 멈출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것이 또한 사람의 운명입니다. 네트렙코가 오페라 무대에 등장한 이후 벌써 제 2, 3의 네트렙코가 그 뒤를 이으며 네트렙코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 또한 그 누구도 멈추거나 돌이킬 수 없는 오페라의 흐름이고 네트렙코의 운명입니다.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고, 그는 소비에트가 길러 러시아가 자랑하는 21세기 오페라의 새로운 아이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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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았..[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았..

Posted at 2012.09.07 08: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3)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피아노의 시인 쇼팽


2010년은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쇼팽과 슈만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그 해는 두 작곡가의 삶과 음악을 새롭게 조명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각각 한 여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나이 차이와 장인의 극렬한 반대까지 극복하고 결실을 맺은 슈만과 클라라 비크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병약한 쇼팽을 보살핀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도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작 쇼팽과 상드를 맺어준 사람이 리스트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아노에 관한 한 두 사람이 음악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이기에 서로 숙명적인 라이벌이라는 점은 주목하면서도 쇼팽과 리스트가 단지 한 살 차이였고 파리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Chopin 12 Etude In E Major, Op.10  no 3 - 이별의노래

피아노; 프레디 캠프

 

 

삶이 너무나 버거웠던 독일 낭만 음악 최고의 지성 슈만

 

흔히들 19세기는 피아니스트의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일컬어 지휘자의 시대라고 합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악기는 단연 피아노였다. 한번에 여러 소리를 크고 작게 마음대로 낼 수 있는 피아노는 확실히 다른 악기에 비해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피아노를 치려는 사람도 많았고 피아노를 위한 곡도 많이 만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할 만큼 커다란 업적을 남긴 낭만주의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거의가 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특별히 피아니스트로서의 면모의 두드러졌던 작곡가라면 쇼팽과 리스트가 으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것 말고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음악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시대에 쇼팽의 조국 폴란드와 리스트가 태어난 헝가리는 모두 이들 나라 주변에 위치한 힘없고 서러운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이들 이전에 이 두 사람보다 이름을 떨쳤던 음악가가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들보다 더 큰 명성을 누린 작곡가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폴란드를 대표하는 바르샤바 음악원은 쇼팽 음악원으로 불리고 있고 헝가리를 대표하는 부다페스트 음악원은 리스트 음악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도저히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하는 바이올린의 대명사 파가니니의 연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서도 서로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파가니니에 자극을 받은 쇼팽은 연주자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고 파가니니에게서 충격을 받은 리스트는 지나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쳤을 뿐만 아니라 파가니니 주제를 사용한 피아노 연습곡을 작곡하기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이 탄생한 시기도 거의 같아서 쇼팽이 리스트보다 겨우 한 해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30대의 마지막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쇼팽과는 달리 리스트는 그 시대로서는 드물게도 70을 훌쩍 넘겨서까지 그 삶을 이어갔습니다.

 

피아노;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두 사람의 상반된 면면은 이것만이 아니다.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서로 닮은 점보다는 대조적인 모습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각각 세 사람의 잊지 못할 연인이 있었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사랑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게 됩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쇼팽에 비해 리스트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지나치게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쇼팽의 첫 사랑 콘스탄치아 글라도코프스카는 그저 마음 속의 연인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바르샤바 음악원의 성악과 학생이었던 콘스탄치아는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면서 마련했던 고별 연주회에도 함께 출연했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조국을 떠나서도 오랫동안 애틋한 사랑을 홀로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콘스탄치아의 결혼 소식이 전부였다. 두 번째 사랑은 어릴 때 소꿉 친구였던 마리아 보젠스카를 다시 만나면서 뜨겁게 타오르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 결혼을 원할 만큼 열렬한 사이가 되었지만 여자 집안의 반대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그 충격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인 조르즈 상드를 의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상드에 대한 첫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진 쇼팽으로서는 누군가 이끌어 주고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런 점에서는 연상에다 남성적이었던 상드가 제 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끝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상드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많은 걸작들을 만들었지만 서로의 갈등으로 마음을 다친 쇼팽은 상드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Chopin Etude In C Minor Op.10 No.12-Revolution 

피아노;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 1915-1997)

전설...이라는 말로 기억되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

 

리스트의 첫 사랑은 그가 피아노를 가르쳤던 고관 생에리크의 딸 카롤리느였습니다. 카롤리느의 아버지가 끝까지 반대하여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리스트는 스스로 그 충격을 벗어나려고 문학서적과 종교서적을 가까이 했고 이것이 훗날 그의 작품과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리스트의 두 번째 사랑인 다구 백작부인과 세 번째 사랑인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위험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스트는 그런 난관들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구 백작부인과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숨어사는 쪽을 택했고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과는 그들 앞에 놓인 난관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지만 그 어느 방법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과의 사랑을 세상의 축복 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리스트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신앙생활에 매달렸고 이때부터 입게 된 검은 옷을 죽을 때가지 벗지 않았습니다. 리스트에 관한 일화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금처럼 피아니스트가 옆모습을 객석으로 향하게 된 것이 리스트 때문이라고 하는데, 스스로 앞모습보다는 옆모습에 자신이 있어 그렇게 했고 그것을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따라 해서 관행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리스트와는 달리 쇼팽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리스트는 피아노곡 말고도 교향시와 성악곡, 심지어는 종교음악에까지 창작의 세계를 넓혀갔지만 쇼팽은 어디까지나 피아노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음악의 순수함을 추구했습니다.

 

 

Chopin Etude In C Minor Op.10 No.4- 추격

피아노;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에튀드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빠른 곡입니다.

 

 

 

와젠키 공원은 18세기 폴란드 최후의 왕 Stanisław Augustus Poniatowski 에 의하여 만들어진  공원으로 바르샤바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넓은 공원안에는 많은 꽃들과 수목들이 우거져 있으며 작은 새들과 다람쥐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민들의 안식처로서 항상 많은 시민들이 평화롭게 산책하는 공원이다.

와젠키 공원입구엔 보리수나무 아래 쇼팽공원이 조경되어 있다. 매년 여름면 이 쇼팽공원에서  '쇼팽의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다.   그것도 무료로 그래서 요즘엔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렇게 음악이 다르고 생각이 달랐지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서로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컸습니다. 쇼팽의 음악세계를 높이 평가한 리스트는 명 피아니스트 칼크브레너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쇼팽을 만류했고 쇼팽은 이러한 리스트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는 쇼팽을 위해 조르주 상드를 소개한 것도 다름 아닌 리스트였습니다. 서로가 한 길을 걸으면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오래 전에 있었던 남의 나라의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소품들 가운데 야상곡 9-2(다른 곡도 상관없습니다)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쇼팽 - noctorn(야상곡) Op.9 No.2 녹턴 2번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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