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 클래식 음악과 고전 음악으로 떠나는 기차여행.[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 가을! 클래식 음악과 고전 음악으로 떠나는 기차여행.

Posted at 2015.10.13 09:15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가을입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계절이지요. 한가위 명절에 고향을 향했던 들뜬 마음이 채 가라앉기도 전에 뜬금없이 또 다른 여행을 꿈꾸게 됩니다. 비행기나 배를 타고 바다 건너 멀리 떠나는 여행도 있고 자동차로 가까운 곳을 찬찬히 둘러보는 여행도 있겠지만 여행이라면 아무래도 기차를 가장 먼저 떠올리기 마런입니다. 이제는 거의 사라지고 없지만 스크린이나 책에서 만나는 증기기관차의 하얀 연기와 기적 소리는 언제든지 우리를 낭만과 환상 속으로 빠져들게 하지요.





기차는 영화나 소설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체코의 작곡가 드보르작은 기차를 너무나 좋아한 나머지 프라하 역 근처에 집을 구해놓고는 수시로 역으로 나가 기차를 관찰했고 심지어는 창작에 몰두하다가도 기차 소리만 들리면 뛰쳐나갔다고 합니다. 수업 중에도 학생을 시켜 역으로 드나드는 기차를 확인하게 했는데 기적 소리만으로도 기관차의 종류와 고유번호까지도 식별할 정도였으니 가히 그 관심과 애정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그리고 평생을 그토록 원했던 프라하 음악원의 교수 자리를 박차고 미국으로 건너간 것도 하루가 다르게 신대륙의 지도를 바꾸어놓을 만큼 눈부시게 급성장하고 있던 미국 철도산업의 현장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목격하려는 마음이 무엇보다 앞섰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아닌게 아니라 미국에 있는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기차를 타고 뉴욕을 벗어나 여행을 다녔고 그의 대표작인 교향곡 “신세계로부터”에 그 흔적을 고스란히 남겼습니다. 1악장에서 느린 서주가 끝나면 음악이 점점 빨라지면서 마치 기관차가 역에서 출발하는 모습을 연상하게 되는데 그에게 있어 이 교향곡은 기차를 타고 신대륙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Antonín Dvořák (출처 : 위키피디아)


기차를 좋아해서 그 마음을 음악으로 남긴 작곡가라면 프랑스 작곡가 오네게르가 단연 으뜸일 것입니다. 20세기 초 에릭 사티의 영향을 받은 여섯명의 젊은 프랑스 작곡가들은 사람들의 삶에서 멀어져 가는 현대음악의 흐름을 다시 사람들 가까이로 돌려놓고자 의기투합했는데 이들이 “프랑스 6인조”입니다. 홍일점인 타유페르르를 비롯하여 미요와 풀랑, 뒤레, 오리크, 그리고 오네게르가 바로 그들로 그들은 길지 않고 복잡하지 않은 음악으로 우리 주변의 친근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담아내려고 했습니다. 누구보다 기차를 좋아했던 오네게르는 당시 파리와 리옹 사이를 오갔던 특급열차의 이름과 모습을 그대로 음악에 옮겨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기관차 퍼시픽 231”입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는 120km 의 빠른 속도로 철로를 질주했던 이 열차는 당연히 기차 매니어 오네게르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오네게르는 그 늠름하고 날쌘 모습을 음악으로 묘사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Pacific 231G (출처 : 위키미디아)


오네게르는 기차를 향한 그의 열정과 이 곡을 작곡하게 된 의도를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나는 늘 기관차를 뜨겁게 사랑하였다. 나에게 기관차는 살아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다른 이들이 여자나 말을 사랑하듯 그렇게 나는 기관차를 사랑하였다. 이 곡에서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단지 기관차의 소리만이 아니다. 그것은 눈으로 들어오는 인상과 몸으로 느끼는 희열을 음악적으로 꾸미고 옮기려고 의도한 것이다." 곡의 제목이자 열차의 이름인 퍼시픽 231에서 231은 기관차 바퀴의 배열을 나타낸 것으로 맨 앞의 작은 바퀴 두 쌍과 이어지는 큰 바퀴 세 쌍, 그리고 뒷 부분의 작은 바퀴 한 쌍을 숫자로 표시한 것입니다. 그는 6분여의 짧은 음악 안에 그는 기적을 울리며 출발을 준비하는 기관차의 모습에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여 거침없이 질주하다가 마침내 종착역에 이르러 속력을 줄이고 멈추기까지의 여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Honegger - Pacific 231



음악사에서 기차와 얽힌 사연이 늘 이렇듯 신나고 두근거리는 것만은 아닙니다.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독일의 작곡가이자 스승인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진 브람스의 마지막 삶의 여정과 사랑의 불꽃은 그들 사이를 이어주었던 마지막 기차를 놓치면서 서서히 꺼져들게 됩니다. 멀리서 늘 보살피고 돌보면서도 차마 가까이 갈 수 없었던 클라라가 끝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아마도 홀로 힘들게 병마와 싸우던 브람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평생을 마음 속에 간직하며 사랑했던 여인의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 싶었던 그는 억지로라도 몸을 추슬러 밤기차를 타고 프랑크푸르트로 가려는 무모한 시도를 감행했으나 안타깝게도 역에 도착했을 때 그 열차는 떠나고 없었습니다. 차가운 밤공기에 몸을 다치고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지면서 마음까지 무너져버린 브람스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었는 지경에 이르렀고 마침내 클라라가 떠난 이듬해 그 뒤를 따르게 됩니다.





이 가을 여러분은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그리운 이가 있어 무작정 달려가고 싶은가요? 그렇듯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한 무엇인가를 마음에 품고 있나요? 기차가 아니고 여행이 아니더라도 우리에겐 먹고 사는 것 말고 무엇인가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만큼 소중한 것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날이 따분하고 지루해서 무기력할 때, 또는 견딜 수 없이 힘들고 지칠 때, 그 존재만으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기차로 떠나는 여행을 갈망하게 되는 이 가을 여러분에게 기차 대신 음악으로 떠나는 여행을 권해봅니다.


 

Dvorak - Symphony No.9 in E minor Op.95 "New World"

(교향곡 9번 E단조 작품95 "신세계로부터") - 네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홍성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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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았..[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크지 않았..

Posted at 2012.09.07 08: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3)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아름다운 라이벌, 쇼팽과 리스트

 

 

 

피아노의 시인 쇼팽


2010년은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쇼팽과 슈만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그래서 그 해는 두 작곡가의 삶과 음악을 새롭게 조명하는 다양한 시도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면 각각 한 여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쉽게 발견하게 됩니다. 나이 차이와 장인의 극렬한 반대까지 극복하고 결실을 맺은 슈만과 클라라 비크의 사랑 이야기는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병약한 쇼팽을 보살핀 연상의 여인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도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정작 쇼팽과 상드를 맺어준 사람이 리스트였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피아노에 관한 한 두 사람이 음악사를 통털어 가장 위대한 작곡가이자 연주자이기에 서로 숙명적인 라이벌이라는 점은 주목하면서도 쇼팽과 리스트가 단지 한 살 차이였고 파리에서 함께 활동하면서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점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Chopin 12 Etude In E Major, Op.10  no 3 - 이별의노래

피아노; 프레디 캠프

 

 

삶이 너무나 버거웠던 독일 낭만 음악 최고의 지성 슈만

 

흔히들 19세기는 피아니스트의 시대라 하고 20세기를 일컬어 지휘자의 시대라고 합니다. 낭만주의 시대의 대표 악기는 단연 피아노였다. 한번에 여러 소리를 크고 작게 마음대로 낼 수 있는 피아노는 확실히 다른 악기에 비해 쓰임새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피아노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피아노를 치려는 사람도 많았고 피아노를 위한 곡도 많이 만들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름을 기억할 만큼 커다란 업적을 남긴 낭만주의 시대의 위대한 작곡가들은 거의가 다 그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였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특별히 피아니스트로서의 면모의 두드러졌던 작곡가라면 쇼팽과 리스트가 으뜸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이것 말고도 무척이나 많습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음악의 중심지로 떠오르던 시대에 쇼팽의 조국 폴란드와 리스트가 태어난 헝가리는 모두 이들 나라 주변에 위치한 힘없고 서러운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폴란드와 헝가리에서는 이들 이전에 이 두 사람보다 이름을 떨쳤던 음악가가 없었고 그 이후에도 이들보다 더 큰 명성을 누린 작곡가가 없었습니다. 그 때문에 폴란드를 대표하는 바르샤바 음악원은 쇼팽 음악원으로 불리고 있고 헝가리를 대표하는 부다페스트 음악원은 리스트 음악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그 시대에 도저히 따를 자가 없었다고 하는 바이올린의 대명사 파가니니의 연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에서도 서로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파가니니에 자극을 받은 쇼팽은 연주자로서의 길을 결심하게 되었고 파가니니에게서 충격을 받은 리스트는 지나친 연습으로 손가락을 다쳤을 뿐만 아니라 파가니니 주제를 사용한 피아노 연습곡을 작곡하기까지 했습니다. 두 사람이 탄생한 시기도 거의 같아서 쇼팽이 리스트보다 겨우 한 해 먼저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러나 30대의 마지막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쇼팽과는 달리 리스트는 그 시대로서는 드물게도 70을 훌쩍 넘겨서까지 그 삶을 이어갔습니다.

 

피아노;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두 사람의 상반된 면면은 이것만이 아니다. 하나하나 따지다 보면 서로 닮은 점보다는 대조적인 모습들을 더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에게 각각 세 사람의 잊지 못할 연인이 있었다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사랑의 사연을 들여다보면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게 됩니다.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었던 쇼팽에 비해 리스트는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지나치게 일을 벌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쇼팽의 첫 사랑 콘스탄치아 글라도코프스카는 그저 마음 속의 연인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바르샤바 음악원의 성악과 학생이었던 콘스탄치아는 쇼팽이 폴란드를 떠나면서 마련했던 고별 연주회에도 함께 출연했지만 그게 전부였습니다. 조국을 떠나서도 오랫동안 애틋한 사랑을 홀로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콘스탄치아의 결혼 소식이 전부였다. 두 번째 사랑은 어릴 때 소꿉 친구였던 마리아 보젠스카를 다시 만나면서 뜨겁게 타오르게 됩니다. 두 사람은 서로 결혼을 원할 만큼 열렬한 사이가 되었지만 여자 집안의 반대로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고 그 충격이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랑인 조르즈 상드를 의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상드에 대한 첫 인상은 좋지 않았지만 몸과 마음이 극도로 쇠약해진 쇼팽으로서는 누군가 이끌어 주고 보살펴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런 점에서는 연상에다 남성적이었던 상드가 제 격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는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끝까지 가지는 못했습니다. 상드의 보살핌을 받으면서 많은 걸작들을 만들었지만 서로의 갈등으로 마음을 다친 쇼팽은 상드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프란츠 리스트(Franz Liszt)

 


Chopin Etude In C Minor Op.10 No.12-Revolution 

피아노;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Sviatoslav Richter, 1915-1997)

전설...이라는 말로 기억되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 사람...

 

리스트의 첫 사랑은 그가 피아노를 가르쳤던 고관 생에리크의 딸 카롤리느였습니다. 카롤리느의 아버지가 끝까지 반대하여 사랑을 이루지 못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리스트는 스스로 그 충격을 벗어나려고 문학서적과 종교서적을 가까이 했고 이것이 훗날 그의 작품과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리스트의 두 번째 사랑인 다구 백작부인과 세 번째 사랑인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은 처음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위험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리스트는 그런 난관들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다구 백작부인과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숨어사는 쪽을 택했고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과는 그들 앞에 놓인 난관들을 하나하나 극복하기 위해 있는 힘을 다했지만 그 어느 방법도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이었던 비트겐시타인 백작부인과의 사랑을 세상의 축복 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소망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리스트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신앙생활에 매달렸고 이때부터 입게 된 검은 옷을 죽을 때가지 벗지 않았습니다. 리스트에 관한 일화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금처럼 피아니스트가 옆모습을 객석으로 향하게 된 것이 리스트 때문이라고 하는데, 스스로 앞모습보다는 옆모습에 자신이 있어 그렇게 했고 그것을 다른 피아니스트들이 따라 해서 관행이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리스트와는 달리 쇼팽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보다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전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을 두었습니다. 리스트는 피아노곡 말고도 교향시와 성악곡, 심지어는 종교음악에까지 창작의 세계를 넓혀갔지만 쇼팽은 어디까지나 피아노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음악의 순수함을 추구했습니다.

 

 

Chopin Etude In C Minor Op.10 No.4- 추격

피아노; 발렌티나 리시차 Valentina Lisitsa

에튀드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은 빠른 곡입니다.

 

 

 

와젠키 공원은 18세기 폴란드 최후의 왕 Stanisław Augustus Poniatowski 에 의하여 만들어진  공원으로 바르샤바에서 가장 넓고 아름다운 공원이다. 넓은 공원안에는 많은 꽃들과 수목들이 우거져 있으며 작은 새들과 다람쥐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민들의 안식처로서 항상 많은 시민들이 평화롭게 산책하는 공원이다.

와젠키 공원입구엔 보리수나무 아래 쇼팽공원이 조경되어 있다. 매년 여름면 이 쇼팽공원에서  '쇼팽의 피아노 콘서트'가 열린다.   그것도 무료로 그래서 요즘엔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한다

 

두 사람이 이렇게 음악이 다르고 생각이 달랐지만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서로를 진정으로 위해주는 마음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서 경쟁심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그 보다는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를 격려하는 마음이 더욱 컸습니다. 쇼팽의 음악세계를 높이 평가한 리스트는 명 피아니스트 칼크브레너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쇼팽을 만류했고 쇼팽은 이러한 리스트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실연의 아픔을 이기지 못하는 쇼팽을 위해 조르주 상드를 소개한 것도 다름 아닌 리스트였습니다. 서로가 한 길을 걸으면서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갈등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오래 전에 있었던 남의 나라의 이야기는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소품들 가운데 야상곡 9-2(다른 곡도 상관없습니다) 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쇼팽 - noctorn(야상곡) Op.9 No.2 녹턴 2번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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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작곡가 멘델스존.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던 해에 세상에 태어난 멘델스존을 아시나요?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작곡가 멘델스존.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던 해에 세상에 태어난 멘델스존을 아시나요?

Posted at 2012.06.21 11:3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7)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작곡가 멘델스존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1809,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던 바로 그 해에 멘델스존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같은 해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태어난다는 것부터가 서로 상반된 운명이지만 그것 말고도 두 사람의 삶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아마도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작곡가들 가운데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자란 이가 하이든이었다면 멘델스존은 아마도 가장 부유하고 유복한 환경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누렸던 경우였을 것입니다. 그의 집안이 당시 독일에서도 손꼽히는 재력가였으니 오늘날로 치자면 재벌집의 귀한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이 미소녀... 아니 미소년은???

젊은날의 멘델스존의 초상화[멘델스존 13세]

 

부유한 은행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경제력과 교양을 두루 갖춘 부모덕에 어느 하나 소홀함이 없는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 주어진 그 많은 것들 가운데 음악을 택한 것은 부모의 뜻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다른 길을 강요하지는 않았습니다. 말하자면 멘델스존은 스스로가 타고난 재능에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 완벽한 환경까지를 갖춘 행운아였습니다. 거기에 넉넉한 인품과 온화한 성격까지 지니고 있어 당대의 음악가들은 물론이고 각계각층의 여러 사람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많은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무엇 하나 남부러울 것 없었던 멘델스존도 건강만큼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던지 38세의 아까운 나이로 삶을 마쳐야 했습니다. 어찌 보면 이것 역시 일흔을 넘어 살았던 하이든과는 상반된 운명이었던 것이지요. 두 사람의 삶의 여정은 그토록 달랐지만 온화하고 넉넉한 인품과 그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 세계는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반드시 주어진 환경이 사람의 성격과 삶을 결정짓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세월에는 장사 없구나... 중년의 멘델스존

 

흔히 사람들은 그가 남긴 작품들이 그의 평탄했던 삶과 무난했던 성격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듯 절실하거나 치열한 그 무엇인가가 빠져 있다고들 합니다. 멘델스존의 음악에서 그다지 새롭고 도전적인 시도가 보이지 않고 대체로 밝고 낙천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두고 사람들은 그가 살았던 삶과 그의 성격을 결부시켜 설명하려는 것이지요. 그래서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를 놓고는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업적을 남겼을 것이라며 온갖 추측을 다하면서 멘델스존에게는 또 다른 음악세계의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만약 멘델스존이 베토벤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면 불굴의 의지를 불태웠을까요? 물론 아니라는 대답이 옳다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환경이 바뀐 만큼 어떤 식으로든, 그리고 어느 정도까지는 그의 음악도 달라졌으리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고난과 역경이 베토벤 음악의 밑거름이 된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것을 극복할 의지가 없고 그것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남다른 재능이 없는 사람에게 시련은 견디기 힘든 고통과 회복할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길 뿐입니다. 반대로 아무리 모든 것을 다 갖춘 환경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자신에게 맞게 십분 활용할 줄 아는 지혜가 없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스스로를 나태하게 만드는 독약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흔한 일이 아니지만 좋은 환경이 약속하는 나태한 삶의 유혹을 뿌리치고 스스로를 단련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는 사람도 드물게 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마치 넉넉한 환경이 남 사정을 헤아릴 줄 아는 여유와 아량을 만든다는 말이나 힘겹게 살아본 사람이라야 어렵게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도울 수 있다는 말이 모두 다 틀린 말이 아닌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멘델스존의 와이프입니다. 멘델스존이 19세기 꽃미남 이라고 하던데...

예쁜 얼굴에, 완전 부잣집 아들에, 게다가 천재성까지~ 19세기의 엄친아가 아닐까요?

 

어찌되었든 멘델스존은 자칫 스스로를 다그치지 않아도 안락한 삶이 보장되는 환경의 유혹을 극복했고 스스로가 겪어보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사정과 형편까지도 헤아리고 보살필 줄 아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늘 작품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담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그 유명한 바이올린 협주곡을 만들 때도 바이올리니스트 다비트의 조언에 귀 기울였습니다. 작곡도 중요했지만 그만큼 중요한 일이 너무나도 많았고 그것들을 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능력과 열의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자신이 맡은 악단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었고 교육자로서 음악학교를 세워 후학들을 길러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흐와 같은 선배 작곡가를 찾아내서 세상에 알렸을 뿐만 아니라 서로 교류했던 많은 동료 음악가들이 뜻을 펼 수 있도록 힘쓰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바흐의 음악을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알린 장본인이 바로 멘델스존이었고 또 바흐의 고장 라이프치히의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그곳에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한 것도 멘델스존이었던 것입니다.

 

 

사진 출처 : 론리플렛 매거진 코리아.

 

남에게 관대한 사람들은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기 마련입니다. 멘델스존이 바로 그랬고 그래서 제대로 건강을 돌보지 못하고 그렇게 일찍 세상을 등져야 했습니다. 남의 작은 허물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큰 허물도 어물쩍 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을 애써 외면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나면 그렇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나도 초라해지기 때문입니다. 멘델스존을 지나치게 폄하하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주로 독창성을 운운하면서 크게 새로운 것이 없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라 애써 만들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의 입장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으니 멘델스존의 생각으로는 차라리 옛 것을 찾아 미래의 초석을 삼으려 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두들 새 것에만 신경 쓰고 있을 때 바흐를 찾아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흙속에 뭍인 보석을 발견해서 온 세상에 그 빛을 발하도록 하는 것이 독창적이지 않다는 것입니까. 자신만이 홀로 남다른 생각을 키워가기 보다는 능력 있는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그런 기회를 주려고 백방으로 힘쓴 것이 어떻게 스스로를 갈고 닦은 것보다 못하다는 것일까요. 그리고 학교를 세워 미래의 초석을 닦은 것이 작품을 만들어 후대에 남기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입니까.

 

 

 

 

사람들은 왜 작곡가 멘델스존을 벗어나 음악학자이며 지휘자인 멘델스존을 이야기하고 음악교육자 멘델스존을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비교를 강요합니다. 그것도 누군가의 모든 것을 두루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둘도 아닌 하나만을 앞세워서 비교하려고 듭니다. 비교를 통해 서로 다른 점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면서 사고의 폭을 넓히고 삶의 여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 우열을 가리고 선택을 부추깁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쉽게 무엇인가를 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누군가를 비난합니다.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일류병도 따지고 보면 성급하고 잘못된 비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과외를 시키고 넓은 공부방을 준다고 해서 모두 공부를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저 몰아 부치고 다그친다고 의욕이 생기고 투지가 불타는 것도 아닙니다. 공부를 못하면 그것 말고 달리 잘하는 것이 있을 것이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 가장 값진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문제는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가진 것을 얼마나 키워서 어떻게 나누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멘델스존이야말로 낭만주의 시대를 통틀어 가장 값진 삶을 살다가 간 사람이었습니다.

 

 


 

Sarah Chang: Mendelssohn Violin Concerto Mvt.1 Part1

멘델스존의 작곡 중 유명하다는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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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은 삼백년마다 새로 태어난다?[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음악은 삼백년마다 새로 태어난다?

Posted at 2011.11.03 18:18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 음악이 300년마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 인간의 역사가 늘 되풀이된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문명도 그러려니와 나라도 그렇고, 한 인간의 삶도 부침을 거듭하기 마련이라는 것이지요. 드물지만 그 가운데 어떤 일들은 일정한 시간을 두고 거듭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요, 대표적으로 서양 음악의 역사가 그렇다고들 합니다. 음악의 기원을 따지자면 까마득한 원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겠지만 기록으로 남은 음악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보편적인 역사라는 것이 문자 기록이 있고난 다음부터인 것과 마찬가지로 음악의 역사를 제대로 언급하자면 음악의 기록, 즉 악보가 남아서 그것을 지금에 와서 고스란히 되살릴 수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보통 서양음악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그레고리오 성가를 먼저 언급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악보로 남아서 오늘날에도 재현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그의 재위 14, 즉 서기 590년부터 604년 사이 동안 유럽 각지의 성가들을 집대성하여 편찬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 작업의 방대함을 생각한다면 교황이 시작했지만 그의 사후에 한참이나 지나서 완성되었을 것입니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그레고리안 찬트(Gregorian chant)라고 하는데,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이름을 따서 붙인 성가 형태이다. 물론 교황께서 그레고리오 성가를 모두 직접 만드신 것은 아니고, 그분께서 당시의 성가들을 정리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을 기리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다.



그래서 그것이 온전한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을 백년쯤 뒤로 생각한다면 700년경이 되는 셈입니다. 그리고 약 삼백년쯤이 지나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선율에다 다른 선율을 붙여서 동시에 부르는 일이 생기게 되었고 또 삼백년쯤이 지난 천 삼백년 경부터는 교회 밖에서 부르던 노래나 악기로 연주하던 춤곡들까지도 기록으로 남겼는가 하면 리듬이라는 것이 음악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렇게 삼백년이 지난 1600년경 우리가 흔히 바로크 음악이라고 하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1900년에는 지금의 우리가 들어도 생소하기까지 한 현대음악이 탄생한 것이지요.
라틴어로 기록된 오래된 문헌을 보면 1300년경에 시작된 획기적인 새로운 음악을 아르스 노바신 예술이라 일컬었고 이전 300년 동안의 음악을 이와 구분하여 아르스 안티쿠아’, 구 예술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가 나중에 바로크라 부르게 된 1600년경의 음악도 라틴어로 누오베 무지케’, 신 음악이라 했고 20세기의 현대음악은 영어로 뉴 뮤직이라 부르고 있으니 결국은 1300년경부터 300년마다 등장하는 새로운 음악들의 이름이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아르스 노바는 新 예술이었으며, 바로크는 新 음악이고, 현대음악은 New Music 이다.


| 묘한 것은 1300년대 이후 백오십년마다 또 다른 징후가 나타났다는 것인데, 1450년경에 르네상스 시대가 열렸고 1600년과 1900년 사이의 1750년경에는 고전주의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가 특별히 주목해야 할 시기가 바로 1750년대 이후의 백오십년입니다. 그 백오십년 사이에 고전주의 시대와 낭만주의 시대가 이어지면서 지금 우리가 즐겨 듣는 클래식 음악의 명곡들 대부분이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의 어원은 고대 로마시대의 계급을 가르키는 라틴어로 잘 정돈된, 품위있는, 영구적이며 모범적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후 예술사에서 고전주의 시대를 일컫는 말로 클래식이 사용되다가 지금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클래식 음악이라 하는 영역까지 아우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된 까닭이라면 당장 그 말이 가지는 의미에서부터 찾을 수 있겠지만 고전주의 시대 이후의 음악이 클래식 음악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도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전까지 나라마다, 혹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지던 서양의 음악이 고전주의 시대 이후 점점 하나의 질서로 통일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통합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질서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이 바로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입니다. 그래서 그를 음악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1750
년은 다름 아닌 바흐가 세상을 떠난 해입니다. 한 시대의 종말과 한 시대의 시작을 한 작곡가가 생애에서 찾은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의 역사는 늘 위대한 작곡가의 전기로 채워져 있는 모양입니다. 어찌 보면 바흐는 바로크 시대에도 속하지 않고 고전주의 시대에도 속하지 않는 작곡가입니다. 속한다기 보다는 시대를 초월해서 존재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베토벤의 위대한 업적도 마찬가지입니다. 바흐가 그랬던 것처럼 그 역시 고전주의 시대를 완성하여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래서 대게는 그를 고전주의 시대의 작곡가라 하지만 좀 안다는 사람들은 낭만주의 시대의 선구자로 그를 자리매김합니다. 그러나 그도 바흐와 마찬가지로 어느 한 시대가 아니라 두 시대를 다 포용했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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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교수님 어제 계명아트센터에서 함께 있었던 최인규입니다.

    명쾌하고 즐거운 설명 갑사합니다.

    내년에 북구에서 뵙기를 희망하고 이건콘서트에서 다시 뵙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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