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과 그림읽기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과 그림읽기

Posted at 2013.03.25 17:33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안녕하세요~~

이번엔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의 책 속에서의 그림읽기를 하려 합니다.

 "자기혁명"이란 제목은 참 맘에 안 드는데, 그의 박학다식함과 깊은 고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이 책에선 그림에 대해서 말하려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의 박학다식함으로 현대 미술에 대한 이야기 하였기에 "자기혁명" 속 그림읽기를 포스팅 하려 합니다.

"자기혁명" 책에서의 그림읽기

그림에 대한 이야기의 제목은 "나는 원본인가 이미지인가"입니다.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키치(kitch)"에 대한, 예술에 대한 의견을 남깁니다.

먼저 키치(kitch)에 대해 말씀드리면,

키치(Kitsch)란 ‘통속 취미에 영합하는 예술 작품’을 가리키는 말.

'잡동사니', '천박한' 이라는 의미를 지닌 키치라는 용어가 처음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으로 애초에 미학적인 안목이나 경험을 거의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통속적인 싸구려 그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일부러 유치하고 천박한 방법을 동원함으로써 기성 예술의 엄숙주의를 조롱하고 야유하는 예술의 한 형식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 <출처 : 시사용어사전, 2005>

라고 합니다.

키치라는 단어를 조회하시면, 키치패션, 키치제품디자인, ... 등이 조회되고,

영화, 문화예술, 문학의 사전에서도 그 용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뒤샹의 <샘>에 대해서 간단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하튼 작가는 키치를 통해, 작품의 본질의 상실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제보다 복제품이나 대체물에 기반해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말한 그에게 있어서 뒤샹의 작품 <샘>은 그냥 변기일 뿐이다.

 

<마르쉘 뒤샹, 샘, 1917>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우리도 때때로 이런 작품을 보고 감동하는 척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주위의 눈치를 보기도 합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은,

유명 화가의 작품이라니까 그냥 혹 하는 것이나,

어떤 철학적 사고나 노력없이 그냥 순간적 발상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인 양 말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라 생각됩니다.

현대 미술을 감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주위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로 전통적 작품이 예술적이라는 편견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참고로 뒤샹은 이 작품을 철학적 사고가 있어서 출품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 서구 미술에 대한 비판을 위해서 이 작품을 출품했던 것이지,

이것을 어떤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전통적으로 예술이라 부르는 편견에 대한 비판이었습니다.

 

간혹 현대 미술을 보노라면,

"나도 이 정도는 만들겠다"라는 마음이 들곤 합니다.

아래 작품을 보시고, 어떤 평가를 하시겠습니까?

 

피카소의 추상화를 생각하며...

휴대폰에서 어플 하나 다운받은 후 5분 만에 그린 작품(?)입니다.

피카소의 작품 옆에 이것을 살짝 가져다가 작품인 척 하는 것이 키치의 비겁함이 아닐가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키치가 꼭 나쁜 개념만은 아닙니다.

뒤샹의 <샘>처럼 편견이나 선입견을 버리고 열린 개념을 갖게 해 줄 수도 있으니 무가치는 아니라,

예술인 척 하여 진실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대중예술이건 고급예술이건 예술가는 모순을 영감으로 깊이 인식하고, 그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감상자들의 심장을 날카로운 창으로 관통하는 법이다."

감상자가 잘 모른다 하여도,

좋은 작품은 분명 감상자의 심장을 날카로은 창으로 관통하여 그 감동을 전달하리라고 말합니다.

문학적인 표현력까지...

"나는 원본인가 이미지인가"라는 주제에서

"창의성의 발현은 흉내내기(키치)가 아니라,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추억의 퇴비 속에서 이루어진다."라는 말합니다.

그림을 읽는 것도 흉내내기에서 벗어날 때 좀 더 잘 읽을 수 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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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읽기_마르셀뒤샹현대미술읽기_마르셀뒤샹

Posted at 2013.02.21 11:45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현대미술과 일상

인생의 가장 큰 위기는 "내가 왜 살까?"라는 질문을 할 때라 합니다.

마치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나는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삶의 지루함과 긴장감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떠 오릅니다.

이런 위기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죠.

미술에서도 예술이라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대해서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질 때,

갑자기 엄청난 폭풍이 불어 올 때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예술이라 여기던 것들이 마구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현대미술은 아마도 이런 질문에서 시작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르셀 뒤샹을 통하여

1990년에 노벨상을 수상한 옥타비오 파즈는 "현대미술은 마르셀 뒤샹과 파블로 피카소라는 두 극점 사이에서 진행돼왔다."라고 말하였습니다.

마르셀 뒤샹의 작품으로 현대 미술을 조금 엿보고자 합니다.

<마르셀 뒤샹, 샘, 1917년>

이 작품(?)을 보고 '이건 뭐야?' 하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아시는 분은 '아... 이거'하시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작품의 배경과 과정, 뒤샹이 하고 싶었던 의도를 안다면 현대미술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마르셀 뒤샹이 1917년 뉴욕 앵데팡당전 운영위원이었는데 'R. MUTT'라는 가명으로 몰래 출품하였던 작품입니다.

'R. MUTT'란 이름도 변기회사 이름인 'Mott Works'를 살짝 바꾼 것으로 변기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출하였습니다.

참가비 6달러만 내면 질적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작품을 내걸 수 있는 것이 이 전시의 특징이었기에 운영위원과 설치위원들은 대략 난감했었습니다.

이런 것을 전시하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질 염려도 있고, 설치한다 해도 어떻게 설치해야 놓아야 할지도 불분명 했었습니다.

결국 전시기간 내내 이 작품을 전시장 칸막이 뒤어 숨겨 놓는 식으로 전시(?)를 했었습니다.

전시가 끝나자 뒤샹은 <샘>을 왜 아무런 공개적 논의도 없이 전시장에서 배제했는지 <맹인>이라는 잡지를 통해 따졌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미술작품이란 작가가 직접 손으로 제작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작가의 '선택'이라는 주장을 했습니다.

즉 예술은 나타난 결과물에 있지 않고 작가의 정신 속에 있는 것이고 예술가가 무엇인가를 선택했을 때 예술적 가치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는 서구문명의 모순에 대한 비판이었던 것입니다.

서구문명(이성중심주의와 합리주의)이 제국주의 심화와 제1차 세계대전(1914년~1918년)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서구문명은 근본적인 모순을 안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충격을 주지 않는 작품은 그만한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였다.

그에게 예술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런 것이었다.

결국 이런 예술에 대한 철학이 설치미술을 포함해 기성품을 동원하는 현대미술의 기반이 되었다.

사회의 고정관념과 상식에 반기를 들고 이에 대해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것이며, 삶과 예술의 경계가 사라지는 것이다.

<샘>이란 작품의 제목이 말해 주듯, 그는 시대의 모순에 대해서 말하고 있던 것입니다.

다른 작품을 보면,

<미학오디세이2, 진중권, 휴머니스트>

이 작품도 대략 난감합니다. 장난도 아니고...

작품의 제목이 <L.H.O.O.Q.>입니다.

이 글자를 프랑스어 발음에 따라 '엘 아 쇼 오 퀴'로 읽으면, Elle a chaud au cul(그녀의 엉덩이가 뜨겁다) 라는 발음과 같아집니다.

진중권 교수는 이런 반예술적인 그의 철학에 대해 열린 개념을 말합니다.

인간 이성에 대한 낙관주의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그 모순을 보게 된 역사적 배경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현대 미술이 우리에게도 낯선 것은 우리의 예술에 대한 정형화된 정의로 인한 것도 하나의 이유인 것입니다.

물론 뒤샹의 뛰어난 작품도 많습니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1912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회화는 2차원의 평면에서 어느 한 순간만을 표현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사진기가 셔터스피드를 조절하는 것과 같이 그의 작품에서도 시간을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계단을 내려오는 힘의 움직임, 운동도 볼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누드라는 객체의 외형은 해체되어 시간과 힘의 흐름에 따른 흔적만 남아 있습니다.

마치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의 해체는 그 본질을 보기 위한 하나의 과정을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시대적 배경을 설명이 아니더라도, 작품의 과정이 아니더라도 이 작품은 그냥 맘에 듭니다.

 

현대미술 읽기

현대미술 작품을 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 눈치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단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 현재를 보는 또 다른 시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전시소개

'미국미술 300년 Art Across America '이 전시중입니다.

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기간 : 2013. 02. 05. ~ 05. 19.

시대 변화에 따른 미술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것이 매력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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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에 혼합재료를 이용한 미술작품 - 서정민 개인전한지에 혼합재료를 이용한 미술작품 - 서정민 개인전

Posted at 2012.11.22 18:32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안녕하세요.

미술을 중심으로 포스팅을 하는 즐상(즐거운 일상)입니다.

얼마 전 외부 워크숍 참석한 곳에서 우연히 서정민 개인전을 보게 되어 포스팅 해 봅니다. 

일단 색상과 질감이 예쁘게 다가오기에 들어가 보았습니다.

작품은 한지를 말아서 튜브형태로 만든다음 그것을 잘라 다시 붙이는 형식으로 만들어져 있더군요.

절단면에 쓰여진 글자 및 그림으로 인해서 자연스런 색상이 나타납니다.

<무심1-A, 한지에 혼합재료>

이 작품은 무심이란 제목이 맘에 듭니다.

무심이란 작품이 여러 개 있는 걸 보아 작가님께서 무심을 좋아하시는 듯...^^

이 작품이 맘에 드는 것은 원이 아니기 때문이었죠.

물론 원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무심이란 제목을 가진 작품도 있긴 합니다.

무심이란...

만나지 못하고 틀어져 서로 맞닿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게 하는 작품입니다.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것도 무심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시간의 굴레, 한지에 혼합재료>

이것도 범상치 않는 제목이죠.

이것도 엇갈린 아쉬움이 가득 담긴 작품이란 생각이 드네요.

색이 다른 것도 있지만

서로 방향이 다르게 놓여 무엇인가 거스르는 느낌도 있고요.

순응과 거스름의 대비가 보여집니다.

시간의 굴레...

서로 대비되는 것은

순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말해 주고 싶은 것인지

때론 거스를 줄 알아야 함을 말해 주고 싶은 것인지

작품을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하라는 듯 합니다.

한지를 말아서 잘라 놓은 것이라 가까에서 보면 이런 느낌이랍니다.

마이클 앤더슨(큐레이터 겸 작가)의 말을 빌려오면,

"서정민의 작업은 기하학에서의 영원한 구조를 보여준다.

또한 범상치 않은 형식적 요소와 결합한 문화적 요소로 독창적인 미학을 추구하고 있기도 하다.

우아하면서도 도발적인 작업들은 회화나 조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양자의 특징들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새로운 지평의 언어를 사용하고자 하는 최근의 경향들과 함께 하고 있다."

<무심1, 한지에 혼합재료>

이 작품이 [무심1]입니다. 위에는 [무심1-A] 였네요.

작은 조각들이 모여 있으나 그 방향으로 큰 흐름과 형상을 만들고 있죠.

배 형상 같기도 하고, 뿔 형상 같기도 하고...^^

이 작품에서도 "전체와 부분"에 대한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포인트는 우측 아래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죠. 

혼자 외로이 떨어져 있는 조각 하나!

왜? 라는 궁금증을 갖게 하는 것이죠.

미술감상의 즐거움은 작가가 펼쳐 놓은 것에 대한 나만의 자유로운 상상이란 생각을 하게 되죠.

작가의 의도에 대해서 자유롭게 상상하시길...^^

<공간-5, 한지에 혼합재료>

한지를 말아서 잘라 놓아서 색감이 은은하고 잘린 단면 또한 자연스러운 형상을 나타고 있죠.

이 작품엔 각각에 색을 입혀서 알록달록 예쁩니다.

전문가 마이클 앤더슨의 말을 또 빌리면,

"3차원적 조각과 2차원적 회화의 특징들을 교차하면서,

서정민은 형상과 밑바탕을 융화시키게 되고 결과적으로 형식에 이미지를 창조하게 되는 것이다."

멀리서 보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가까이서 보면 세세한 색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죠

2차원 같으나, 3차원의 역동성도 느낄 수 있죠. 

서로 두 방향이 만날 때 입체감은 더 하네요.

 

<축제, 한지에 혼합재료>

자연스러운 색상의 혼합과 3차적 특징이 만들어 놓은 조화가 축제란 작품과 어울립니다.

조각 하나 하나가 모여서 역동적 즐거움을 표현해 주고 있는 듯 하죠.

<축제> 접사한 사진

모두 비슷한 듯 하지만 각각은 서로 다른 색상, 다른 크기, 다른 모양을 하고 있죠.

사람사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다양한 사람이 함께 모여 있는 것, 그것이 축제일 수도 있겠구요.

규칙없이 모여 있으나 그 전체는 역동적이면서도 안정적인 작품이 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면 이런 작품과 같은 사회가 될 거라 생각됩니다.

다음 포스팅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달력 속 그림읽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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