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만나다 - 이건음악회를 거처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만난 이야기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만나다 - 이건음악회를 거처간 베를린 필하모닉 단원 만난 이야기

Posted at 2017.11.30 22:12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음악회 톡톡

지난 11월 19일 베를린 필하모닉과 사이먼 래틀의 한국 공연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공연을 손꼽아 기다린 것은 아마도, 첫 째가 베를린 필하모닉이라는 이유이고, 둘째가 바로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닉과 연주하는 마지막 한국 공연이기 때문이었 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아마도 조성진씨 협연을 보기 위해였겠지요. (원래는 피아니스트 랑랑이었으나 부상으로 인해 조성진으로 교체되었다고 합니다.)

공연의 티켓 가격은 좋은 자리가 45만원, 37만원 등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고 있었지요.  예술의전당 3층 꼭대기도 가격이 7만원인데 저렴한 좌석은 모두 매진이 되었습니다.  진짜 엄청난 인기를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 비싼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무료로 관람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던 이건창호, 이건산업은 정말 대단한 회사군요!라고 깨알같은 자화자찬 해봅니다. ^^;;

사실, 23회 베를린 필하모닉 브라스 앙상블 12명, 25회 베를린 필하모닉 윈드퀸텟 5명, 26회 베를린 필하모닉 카메라타 5명(출연자는 모두 7쳄발로 연주자 1명, 가보 타르코비 중복이라 제외) 등, 모두 합하면 총 22명이나 되는 베를린 필하모닉 멤버들이 이건음악회를 통해 한국은 팬들을 만나 멋진 공연을 펼친 바 있습니다.

중국 공연 중에, 튜바 플레이어인 알렉산더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23회 이건음악회에서 브라스 앙상블 멤버로 한국에 왔을 때 많이 친해졌던 친구입니다. 베를린 필하모닉은 5년만에 한국 방문이나, 2015년 겨울 빈-베를린 앙상블 공연 차 한국 방문 때에도 연락이 왔었지요! 공연 끝나고 맥주 한자는 연락이었습니다. '맥주 보다 공연 티켓을 주고 공연 보러 오라고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_-;; 공연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부담 되는 것 같아 콘서트 끝나고 맥주 한잔 하기로 하였습니다.

생각을 좀 더 해보니 총 80~90 명의 멤버 중에 거의 1/4을 알기 때문에(음악회 담당한지 10년이 다 되어 가네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인사를 하고 싶어졌습니다. 공연 전에 가서 다른 친구들도 보고 싶어 리허설 이후에 백스테이지에서 보기로 약속을 하였습니다.

리허설 끝난 후 만난 베를린 필하모닉 친구들! Long time no see!를 연발하며 격하게 반겨 줍니다. 사실 제 이름이 어렵기 때문에 해외 연주자들이 오면 그냥 저를 NO.1 넘버원이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연락을 위한 전화기를 한대 씩 주는데 그 전화기에 단축번호 1번을 제 번호로 저장해서 전화기를 줍니다. 그 때 설명하죠. 넘버원을 계속 누르면 나한테 연결된다. 내가 바로 넘버원이니 넘버원으로 불러달라..는 것을 영어로 설명하죠. 그럼 해외 연주자들은 대부분 좋아합니다.

 

여기 저기 넘버원을 찾는 소리가 들립니다. 내심 흐믓해지네요~ 이건음악회를 위해 방문한 연주자들은 내부 방침이 극진하게 모시는 것이기 때문에 열과 성으로 모십니다. 최고의 콘서트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은 저와 이건 스텝들이 챙기고 연주자들은 연주에만 집중하게 되죠. 그래서 연주자들은 좋은 기억을 가지고 돌아가게 되고 친구가 됩니다.

 

가장 격하게 반겨줬던 더블베이스 야누스 위드직! 카메라를 굉장히 좋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6회 때 왔었는데 소니에서 니콘으로 카메라를 바꿨네요. 저한테 막 자랑하고, 제 카메라를 막 탐냈습니다. (그 사이에 저는 캐논에서 소니 A9으로 변경 ^^)

반가운 친구들과의 시간도 쑥쑥~ 지나가고 공연 시간이 다가옵니다. 공연 티켓이 없어 ㅠㅠ 공연은 백스테이지와 예술의전당 로비에서 TV로 보았습니다. 역시나 베를린 필하모닉 입니다. 사이몬 래틀경의 멋진 지휘도 공연을 보는 맛을 더합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무대도 역시나 멋집니다. 콘서트를 직접 보지 않은 관계로 자세한 것은 생략합니다. 저는 그냥 친구들 보러 간 것 이니까요 ^^;;

인터미션 시간에도 많은 단원들과 만났습니다. 호른 연주자 사라 윌리스, 퍼거스, 클라리넷 연주자 월터 세이파스, 오보에 안드레아스,  플룻 마이클 하셀, 트럼펫 가보 타르코비, 기욤 젤, 타마스 발렌짜이, 첼로 스테판 콘츠, 비올라 볼프강 울프, 제2바이올린 로마노 토마시니 등등 먼저 와서 인사해주니 주변 사람들이 저를 음악가나 엄청난 기획사에서 나온 줄 아네요. 어깨에 힘도 들어가고 ㅎㅎ 기분도 좋았습니다.  모두들 반가워하고 이건음악회 출연했던 기억들을 이야기 하며 짧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들 이건음악회가 너무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네요. 담당자로서 기분이 엄청 좋습니다.

인터미션 종료 후, 공연 종료 후, 호텔에서 악기를 놔두고 모였습니다.  근처 식당으로 가서 맥주와 간단한 식사를 했습니다.

멤버는 좌측부터 로마노, 가보, 알렉산더, 사라 윌리스, 안나 메린, 안드레 쇼츠(신입 트럼펫 연주자), 그리고 이건 스텝들

 

언제나 쾌활하고 말이 많고 즐거운 가보 타르코비! 이 날도 음악적인 이야기를 하며 로마노와 엄청난 논쟁을 했습니다. 결과는 가보의 승리 ^^; 왼쪽에 알렉산더는 2년만에 보는데 살이 많이 빠졌네요. 애플 제품을 엄청 좋아해요. 애플워치도 찼네요 ^^

 

19일은 사실 친구들을 만나는데 의미가 있었어요. 그런데 베를린 필하모닉 멤버들이 오랜만인데 공연을 관람하지 않은 것에 내심 서운해 하더라구요. 그래서 20일에 꼭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_-;;; 사실 저도 내심 원했습니다. 그래서 20일에도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20일에는 리허설을 일부 오픈한다고 리허설 공연에 초청도 받았습니다. 베를린 필하모닉 공연을 리허설에서 바로 앞에서 본 이야기는 다음 편으로 넘기겠습니다 ^^

사이먼 래틀경을 코 앞에서 봤지요!! ^^

 

[참고 - 베를린 필하모닉 투어 일정]


※ 2017년 베를린 필하모닉 & 사이먼 래틀 아시아 투어 일정
2017.11.10-11 홍콩 @홍콩문화센터
2017.11.12 중국 광저우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2017.11.13 중국 우한 @우한 친타이 콘서트홀
2017.11.16-17 중국 상하이 @상하이 오리엔탈 아트 센터
2017.11.19-20 대한민국 서울 @예술의전당
2017.11.23 일본 카와사키 @무자 카와사키 심포니 홀
2017.11.24-25 일본 도쿄 @산토리 홀

 

※ 베를린 필하모닉 역대 상임지휘자
루트비히 폰 브레너 Ludwig von Brenner (1882-1887)
한스 폰 뷜로 Hans von Bulow (1887-1892)
아르투루 니키슈 Arthur Nikisch (1895-192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Wilhelm Furtwangler (1922-1934)
레오 보르하르트 Leo Borchard (1945)
세르주 첼리비다케 Sergiu Celibidache (1945-1952)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Wilhelm Furtwangler (1952-1954)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Herbert von Karajan (1954-1989)
클라우디오 아바도 Claudio Abbado (1989-2002)
사이먼 래틀 경Sir Simon Rattle (2002-2018) 
키릴 페트렌코 Kirill Petrenko (2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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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여행]가족과 떠나는 제주 힐링여행 1일차[제주도여행]가족과 떠나는 제주 힐링여행 1일차

Posted at 2017.11.30 21:27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2017년 11월 10일 금. 구름 약간 바람 약간 그러나 점점 맑았주었던 그날

 

2년만이다.

이렇게 4명이서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게~~ㅎㅎ

동생들이 결혼한 언니,누나에게 힐링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한 워크샵(?)ㅋㅋ

친정엄마의 전폭적인 지원과 남편들의 도움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를수 있었다.

여행은 언제나 신나지만...싱글로 가는 여행은 베리 그레잇~

제주행 아침비행기에 설레는 맘으로 몸을 슝슝슝~~~쏙!!!!

                                                         〈공항,캐리어,기내식,구름〉

새벽부터 움직여 조금 피곤 했지만 비행기안에서 바라본 하늘의 자태는 진짜 예술이었다.

아침 비행기가 주는 또 다른 매력에 넋을 잃고 말았다.

여행 첫걸음부터 자연이 주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감사한 마음 가득

부지런하게 움직인 우리들의 배꼽시계가 울려주니 맛난거 먹으로 제주시 근처로 고우고우~  

                                                                       〈쥐치조림〉

역쉬!!

실망감을 안겨주지 않는 쥐치조림과 한라산 한 잔 캬~~~~~아~~~~굿~잡!!!!

오전 10시부터 오픈 하는 식당이 많지 않아 메뉴가 다양하지 못해서 고른 쥐치조림 이었지만 맛있당!!

맛있게 먹고 나니 배가 음텅음텅 불러 소화를 시키기 위해 오름을 오르기로 결정!!

억새가 절정이라는 새별오름을 찾아 쒼나게 달려갔다.

                                                                     〈새 별 오 름〉

저 멀리서 바라본 오름에 실망....

......저게....

억 새 절 정???

...맞어....

살짝 실망감을 안고 새별오름을 향행 성큼성큼

와우~~!

그 앞에서 입이 떡~벌어지고 말았다.

저멀리서 보았던 억새는 억새가 아니었음을

잠시 널 오해해 진심

미안했음을.......

바람과 함께 억새가 움직이는 몸짓과 소리는 예술이었다.

〈내편과 함께 걷기 억새♪바람♩구름♬〉

만만히 보고 룰루랄라 호기롭게 도전한 새별오름의 가파름에 한방 맞았다....ㅋㅋ 헉헉헉 평소에 운동좀 해둘 것을 ㅋㅋ

헉헉과 힘듦도 정상에 올라 바라본 새별오름의 아름다움에 어느새 사라지고 묘한 정복감 마져 느끼게 해주었다.

서울에서는 느낄수 없는ㅜㅜ 깨끗하고 맑은 공기와 청량한 바람이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주었다.

가파른 오름에 쥐치 조림은 소화다 됐어요~~~~~~~~ㅎㅎ

 

당 떨어지고 카페인이 부족한 우리들에게 카페인과 휴식을 주기위해 조용하고 아늑한 카페로....

〈제주 한림읍 지니의뜰에 커리나리다〉

제주 제주시 한림읍 귀덕14길 59  ☏070-8831-0022 지니의뜰에 커피나리다

세분의 여자사장님들이 운영하는 "지니의뜰에 커리나리다"는 귀덕리 동네안에 위치하고 있어 아늑하고 조용하게 휴식을

 취하며 잠시 쉬어 가기에 아주 좋은 곳이었다.

〈금귤허니브레드〉

이카페의 대표 메뉴는 "금귤허니브레드"

직접담근 금귤청과 고소한 버터듬뿍올려 견과류로 토핑하고 로즈마리와 함께 바싹 구워낸 상큼달달바싹고소한

맛이 일품이며 귤잼에 찍어 먹으면 더더더 맛나다.

 

〈그밖에 다양하고 맛있는 메뉴들〉

사진크기 수정 불가로 크게 올릴수 없어 포기 하려다가 맛있었는 저들을 버릴수 없어 그냥 올림ㅎㅎ

커피도 맛나고 디저트도 맛나고 어느것 하나 버릴것 없이 풍성한 맛 앞에서 정신 줄 을 놓고 말았다는....ㅋ

인심 후한 사장님의 서비스 무농약 귤은 서울에서 먹던 싱거운 귤이 아니어서 깜놀~~~역쉬 쵝오!!

유쾌하신 세분의 사장님들 덕분에  즐거운 시간 보내고 다음을 또 기약하며 안녕!!

역쉬!!

 여행의 묘미중에 하나는 맛집이지요

언제 이렇게 먹었냐는듯 우리들의 발걸음은 저녁을 먹으로 ㅋㅋ

〈이노찌〉

제주 제주시 전농로 77  ☏064-753-1634

서울에서부터 우리가족과 소소한 인연이 있는 사장님께서 여의도→청담→제주도로 이주해서 운영하는 "이노찌"

10년만에 만난 사장님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셨다.

〈입안에서 살살 녹아주던 너희들>

 

〈사장님 실력에 짝짝짝〉

사장님의 훌륭하신 솜씨에 뿅~~~~뿅~~~~

어느것 하나 맛없는게 없었다는.....

진심 강추하고 싶은 ""이노찌""

나온 메뉴중에 맛없는게 1도 없었다는 이 놀라운 경험을 다른 가족들과 꼭 다시 해보고 싶다.

다음 제주 코스에 이노찌 ""찜""

 

저녁까지 알찼던 제주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또 새로울 제주랑 만날 준비를 하며....

내일 만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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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요리]혼밥_고구마 야채전[간단요리]혼밥_고구마 야채전

Posted at 2017.11.28 17:00 | Posted in 직장인 톡톡/심심타파!

주변에 감사한 지인들이 보내주는 고구마로 무얼 해먹을까?고민하다.

오늘은 "고구마 야채전"을 간단하게 해보기로 했다.

아이들이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짝꿍으로 같이 먹음 더 좋을것 같아 고구마 야채전 정했다.ㅎㅎ

재료는 고구마,당근,양파, 냉장고에 늘 있는 채소들을 집합 시키고,당근이 없음 생략해도 된다.

 

〈고구마1개, 당근 반쪽, 양파는 반쪽만 사용〉

 

〈준비한 재료 얇게 썰어주기〉

 

〈부침가루에 재료 넣고 반죽하기 후추 살짝〉

 

〈식용유를 두른 팬에 한입크기로 굽기〉

 

〈접시에 담기〉

 

〈떡볶이 짝꿍과 야채전〉

 

떡볶이 올려놓고  후다닥 짧은 시간에 간단야채전을 완성했다.

튀김이 먹고 싶었지만 튀김은 튀기는 과정이 여간 번거롭고 뒷일이 많아서 그냥 전으로 간단하게 붙였는데도

떡볶이랑 함께 먹는데 느믐느믐 맛있다는 아이들의 말에 아싸 얍 ㅋㅋ!!!!

고구마는 쪄먹는게 제일 편하지만 가끔은 색다른 맛을 느끼고 싶을때 후다닥 간단하게 집에 있는 재료를 썰어서

해먹기에 참 괜찮은 메뉴다.

밀떡과 함께 먹는 야채전 강추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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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추운날 아이들과 분당나들이[주말]추운날 아이들과 분당나들이

Posted at 2017.11.2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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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의 따뜻한 나눔활동, 사랑의 연탄배달이건의 따뜻한 나눔활동, 사랑의 연탄배달

Posted at 2017.11.28 11:17 | Posted in 이건이 만드는 세상 Talk Talk



지난 2017 11 24일 이건의 또 다른 나눔 활동이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인원이 투입되고 가장 노동집약적 봉사인 “사랑의 연탄 배달”입니다.

 

이번 행사에도 이건홀딩스, 이건산업, 이건창호, 이건그린텍, 이건에너지 등 이건 관계사 5곳에서 지원한 60 여명의 직원들이 함께 땀흘리며 참여 해주셨습니다.

 


사실 작년에 비해 연탄 기증 수량도 늘었고 총 배달 수량도 늘었습니다. 지게를 활용한 배달 방식으로 진행했기 때문인데요. 인천연탄은행은 효율적인 배달을 위해 지게를 활용합니다. ^^ 이렇게 하면 4장씩 안전하게 먼 곳 까지 배달이 가능합니다


5장 이상 쌓으면 안정성이 조금 떨어지는 단점은 있지만, 한 장씩 전달 하던 방식에 비해 손과 허리의 부담은 덜합니다. 다만 많이 걸으니 다리에는 조금 더 부담이 갔습니다그래도 허리는 아프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  역시 도구라는 것이 참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습니다.  

 


연탄이 등이나 옷에 묻지 않게 우비와 함께 장갑을 착용합니다기본적으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히 연탄을 나를 수 있습니다연탄배달 시스템은 총 3개의 역할로 나누어집니다쌓여 있는 연탄을 지게꾼들에게 전달해주는 역할지게를 이용해 집으로 배달해 주는 그룹그리고 각 집에 정확한 개수를 세며 이쁘게 쌓아주는 역할 등 3가지로 나누어집니다










9년 째 해서일까요? 빠르게 자신들의 역할을 찾아서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민 분들도 오셔서 응원해주시고 분위기가 좋았습니다연탄은행 팀장님께서는 1장 떨어트릴 때마다 5천원을 기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겠다며… 연탄이 낭비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압박을 주셨습니다!



배달 중에 동네 어르신께서 많은 칭찬을 해주셨습니다. 요즘은 연탄 값도 비싸고 배달해주는 비용을 따로 받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또 골목이나 경사가 있는 곳은 돈을 더 주더라도 배달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아 굉장히 힘들다고 합니다. 이건 덕분에 연탄을 무료로, 그리고 배달 까지 해주니 감동하셨다는 말씀에 힘이 더 났습니다. 어르신들께서 올 겨울 따듯하게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배달 사진을 보시겠습니다. 


(이건홀딩스 안기명사장님께서도 정말 열심히 참여해주셨습니다.) 



3시간이 흘러 어느 덧 연탄 배달이 끝나갑니다. 마무리는 따뜻한 호빵과 캔커피를 준비했습니다. 배고픈 이건인들의 호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내년에는 오뎅탕을 준비하면 어떨까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봉사도 봉사지만 행사는 즐거워야지요 ^^;;

 

7,000(실제 배달은 연탄은행과 협의하여 약간 줄었습니다) 배달을 마치고 어르신들 댁에는 따뜻한 연탄을 놓아 드리고, 이건인들 마음 속에는 따뜻한 온기를 담아 왔습니다.

 

항상 나눔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시는 이건인들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이건의 따듯한 나눔소식 정기적으로 전하겠습니다

이 글을 보시는 많은 분들도 주변 이웃을 위해 나눔활동에 동참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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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연주자의 악기와 같다[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오케스트라의 콘서트홀은 연주자의 악기와 같다

Posted at 2017.11.23 09:51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연주자에게 악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악기가 나쁘면 좋은 소리가 나지 않아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은 악기를 사려고 가진 돈을 다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빚을 내서 평생을 갚느라 허덕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출처 : https://nmbx.newmusicusa.org/whats-a-musician-worth/


연주자에게 악기만큼 중요한 것이 공연장입니다. 악기의 울림이 아무리 좋아도 그걸 공연장이 그대로 받아서 제대로 청중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공연장의 울림이 좋고 나쁘고의 차이는 혼자 연주할 때보다 여럿이 함께 연주할 때, 특히 여러 종류의 악기들이 어우러져 연주할 때 더 잘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오케스트라에게 있어 전용 콘서트홀은 악기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London_Symphony_Orchestra


연주자가 좋은 악기를 사기 위해 집을 팔고 빚을 내는 것을 이해한다면 오케스트라가 좋은 콘서트홀을 갖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콘서트홀을 가질 형편이 못되면 빌려 쓰는 것도 생각할 수 있지만 그 안에 늘 머물면서 필요할 때면 언제나 연습하고 연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면 콘서트홀의 조건에 적응한 최상의 음향을 만들고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출처 : http://tch15.medici.tv/en/concert_halls/mariinsky-3


공연장을 짓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드는 까닭에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다수 지방자치 단체들은 연주회 뿐만 아니라 오페라와 발레, 연극과 무용 뿐만 아니라 뮤지컬 공연까지 가능한 다목적 공연장을 만들어서 운영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대부분이 공연의 어느 장르에도 딱 들어맞지 않아 공연의 완성도가 떨어질 뿐만 아니라 공연을 만들 수 있는 여건도 갖추지 못해 제대로 가동되고 활용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말하자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 한 마리도 잡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이에 몇몇 지방자치 단체들이 먼저 나서서 특정 장르에 적합한 공연장을 새로 짓거나 짓고자 노력중인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경우가 대구시민회관입니다. 오래 전 다목적 공연장으로 지어 낡고 낙후된 공연장을 연주회 전용 콘서트홀로 리모델링한 경우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적합한 음향조건을 갖춘 까닭에 이곳에 상주하여 전용홀로 쓰고 있는 대구시립교향악단의 역량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가 하면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도 날마다 늘어나 연주회 마다 연일 매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출처 : http://www.daegucity.net/bbs/board.php?bo_table=B85&wr_id=1


대구가 이렇다면 다른 지자체라고 안될 까닭이 없고 서울이라면 더더욱 서둘러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 막 세계 무대의 문턱에 올라서려는 순간,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련을 겪고 있는 서울시향이 지금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계기가 전용 콘서트홀 건립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면 비전이 필요하고 희망이 절실한 지금이야말로 놓치지 말아야 할 바로 그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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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재즈 음악의 탄생(뉴올리언스와 루이암스트롱...)[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재즈 음악의 탄생(뉴올리언스와 루이암스트롱...)

Posted at 2017.11.21 13:39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루이 왕의 땅이라는 뜻의 루이지애나의 항구도시 뉴올리언즈는 새로운 오를레앙이라는 이름이 말해주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 이민자들의 도시입니다. 이곳에 남부 농장으로 팔려갈 흑인 노예들이 들어오면서 흑인 인구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혈통과 흑인의 피가 섞이게 되었습니다. 크리올이라 불린 이들은 음악적인 재능이 뛰어나 악사로 생계를 꾸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들이 재즈 음악 역사의 첫 장을 열게 됩니다

 

출처 : http://www.lifeinus.com/Travel/168/


이 세상에서의 삶이 말할 수 없이 고달팠던 흑인들은 노예 시절부터 늘 조물주의 부르심을 받아 요단강을 건너가는 그 순간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니 장례식이 다른 어떤 의식들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그들 나름의 독특하고 성대한 장례식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 장례식의 볼거리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밴드를 앞세운 장례식 행렬로, 뉴올리언즈를 배경으로 한 헐리우드 영화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흑인들의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밴드라면 당시 흑인들의 교회음악인 흑인영가를 연주했을 것입니다. 악보도 없을뿐더러 그것을 읽을 줄도 모르는 그들 사이에서는 트럼펫보다 좀 더 크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는 코넷이 먼저 첫 소절을 연주하면 나머지 악기들이 적당히 알아서 따라가는 것이 나름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더운 날씨에 묘지까지 이어지는 긴 장례식 행렬의 앞에 서서 무거운 악기를 연주하며 걸어가야 하는 악사들에게 느리고 단조로운 음악을 되풀이하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아마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축 처지는 음악의 리듬을 살짝 비틀고 밋밋한 가락에도 곁가지를 솜씨 있게 덧붙이면서 처음과는 전혀 다른 흥겨운 음악으로 탈바꿈했을 것이고 그것이 사람들의 호응을 얻으면서 점점 더 많이, 또 널리 퍼져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출처 : https://www.jazzartsgroup.org/new-orleans-the-birthplace-of-jazz-by-byron-stripling/


이것이 바로 재즈 음악의 시작이었습니다. 재즈의 바탕이 된 음악이라면 흑인영가와 더불어 블루스와 랙타임을 들 수 있습니다. 랙타임은 선술집에서 주로 흑인 연주자들이 피아노로 연주하던 단조로운 2박자의 음악으로 우리 귀에 익숙한 영화 "스팅"의 주제 음악이 바로 그것입니다. 랙타임 연주자들은 센 박자 다음에 여린 박자가 나오기 마련인 원래 순서의 앞뒤를 바꾸는 싱코페이션, 즉 엇박자를 연주함으로써 리듬에 변화를 주었는데 이런 식의 변주가 재즈 음악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블루스는 백인들의 온갖 멸시를 견디며 고달픈 나날을 살아야 했던 흑인들의 탄식과 푸념을 담은 신세타령과도 같은 음악입니다




날마다 힘겨운 노동을 견디기 위해 햇살 따가운 들판에 서서 누군가 먼저 부르면 모두가 함께 따라 부르던 노동요의 가락은 저도 모르게 그들 입안에서 맴돌았을 겁니다. 고된 하루 일을 겨우 끝내고 오두막으로 돌아오면 몸은 지칠 대로 지쳐 가누기조차 힘든데 문득 울적하고 답답한 마음에 설움이라도 복받치면 입안에 맴돌던 가락에 한숨과 넋두리를 실어 흐느끼듯 읊조렸을 것이고 그것이 결국 블루스가 되었습니다. 블루스의 음계는 7개의 음으로 이루어진 서양 음악의 장음계에서 세번째와 일곱번째 음을 반음씩 내린 것으로 이 또한 재즈 음악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렇듯 전부터 있었던 흑인 음악의 여러 장르들을 받아들여 점점 그 모양새를 갖추게 된 재즈 음악은 주제로 선택하여 먼저 들려주는 기존 음악의 골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즉흥적으로 변형시켜 연주하는 음악을 일컫게 됩니다. 뉴올리언즈 흑인들의 장례 행렬을 이끄는 밴드의 음악에서 시작된 재즈 음악은 점점 뉴올리언즈 사람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파고들더니 결국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대서양을 건너 유럽과 전 세계로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재즈 음악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이름을 떨친 거장은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당대에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트럼펫 연주자였으며 음악의 가락을 가사 없이 입으로 따라 부르는 스캣송을 널리 퍼뜨려 재즈 보컬의 전형으로 만든 장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밴드의 악사들이 함께 연주하는 방식을 벗어나 하나의 악기가 따로 그 솜씨를 마음껏 펼치는 새로운 재즈의 연주방식을 처음으로 시도한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그는 뉴올리언즈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곳에서 활동하며 실력과 명성을 닦았습니다. 가정을 팽개친 아버지 대신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살림은 말할 수 없이 궁핍했고 집안에는 늘 남자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남자의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선 소년 루이는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들뜬 분위기에 휩싸여 허공에다 마구 총을 쏘았고 그 때문에 소년원에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소년원은 삶의 피난처이자 탈출구였습니다. 그곳 밴드에서 처음으로 코넷을 배울 수 있었고 그로 말미암아 음악가의 길에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소년원을 나선 그는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해야 하는 절박한 형편임에도 악기만은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코넷에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점점 더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음악가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출처 : https://www.amazon.com/Louis-Armstrong/e/B000APTKDS


이후 그의 삶은 재즈의 역사와 함께 흘러갑니다. 미시시피강을 오르내리는 증기선에의 밴드도 재즈 음악을 연주하였고 그렇게 강줄기를 따라 미시시피강 유역의 여러 도시에 전파되기 시작한 재즈 음악은 드디어 시카고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리고 뉴욕으로 전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바다 건너 유럽으로 건너갔고 파리와 베를린 같은 대도시들도 재즈의 열기에 몸살을 앓게 됩니다. 고향을 떠난 루이 암스트롱은 시카고에서는 킹 올리버 밴드와 호흡을 맞추었고 뉴욕에서는 프레처 헨더슨 악단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재즈 음악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팽창하면서 활동 무대도 점점 넓어져 그의 음악은 라디오의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알려졌고 음반과 영화를 통해 전 세계에 그 이름을 떨치면서 이후의 어떤 재즈 음악가도 이루지 못한 부와 명성을 누렸습니다.

 



지금껏 아무도 명확하게 밝혀내지 못했지만 재즈 음악의 탄생 시기는 대략 1900년 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반세기도 채 지나기 전에 재즈 음악은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져나가 지구촌 사람들의 영혼을 흔들어놓고 맙니다. 그리고 마침내 흑인들만의 음악이 아닌 모든 인종을 아우르는 음악이 되었고 감히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클래식 음악의 영역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처럼 이전의 그 어떤 음악도 이루지 못한 기적과도 같은 일이 가능했던 까닭을 짐작해 보면 아마도 그 음악에 너무나도 고난한 삶의 흔적과 상처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가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용광로와도 같은 뉴올리언즈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 너무나도 다른 여러 인종과 문화와 가치들이 하나로 녹아들어 음악으로 다시 태어났기에 오날날까지도 꺼지지 않는 불씨로 살아남아 새로 태어나는 세계의 거의 모든 음악에 그 영항을 미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1. 그림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늘 좋은 포스트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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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잃어버린 낭만에 대하여

Posted at 2017.11.17 08:00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살면서 가끔씩은 사람은 도대체 무엇으로 사는지를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영화 속의 명장면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쇼생크 탈출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장면들로 먼저 영화 쇼생크 탈출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젊은 은행가 앤디 듀프레인은 아내와 아내의 정부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아 쇼생크 감옥에 갇힙니다. 간수들의 부당한 처사와 다른 죄수들의 폭력까지도 꿋꿋이 견디며 힘겹게 버티던 어느 날, 간수 한 사람을 도와 세금을 덜 내도록 한 것이 알려지면서 교도소장과 다른 간수들의 세금 감면은 물론 교도소장이 죄수들에게 일을 시켜 착취한 돈을 세탁하고 관리하는 일까지 맡게 되어 그들의 신임을 얻게 됩니다

 

출처 : http://www.imdb.com/title/tt0111161/


그런데 그는 그렇게 얻은 여유와 혜택을 활용해 동료 죄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힘을 씁니다. 여기저기 편지를 써서 도서관을 꾸미고 책을 기증받는가 하면 새로 들어온 젊은 죄수를 가르쳐 검정고시에 합격시킴으로써 이를 지켜본 죄수들 모두에게 보람과 긍지를 안기기도 합니다그러던 어느 날, 간수의 방에서 뜻밖에도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녹음한 음반을 발견한 앤디는 그 음반을 틀고 마이크를 연결해 스피커를 통해 교도소 전체에 음악이 흐르도록 합니다. 순간 교도소 안의 모든 사람들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음악에 귀를 기울입니다. 이제껏 그 안의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 노래는 백작부인과 수잔나가 부르는 "편지의 이중창"입니다. 백작이 자신의 집사 피가로의 약혼녀인 수잔나를 유혹하려 들자 수잔나와 백작부인이 백작을 골려주려고 몰래 만나자는 거짓 편지를 쓰면서 함께 부르는 노래입니다


Mozart - The Marriage of Figaro (모짜르트 '피가로의 결혼)

 

그러나 그들에게 그 내용이나 가사는 알 수도 없을 뿐더러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음악은 마치 천사의 목소리를 듣는 듯 맑고 깨끗하여 그들 마음의 모든 찌꺼기를 단번에 씻어내는 듯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그때 들리는 흑인 죄수 레드의 독백이 그들 모두의 마음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때 두 이탈리아 여자들이 무엇을 노래했는지 모른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는 것이 최선인 경우도 있는 법이다. 노래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가슴이 아팠다. 이렇게 비천한 곳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높고 먼 곳으로부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우리가 갇혀 있는 삭막한 새장의 담벽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그 짧은 순간, 쇼생크에 있는 우리 모두는 자유를 느꼈다.” 

 

출처 : http://www.imdb.com/title/tt0111161/


하지만 앤디에게 그 댓가는 혹독했습니다허락 없이 음악을 틀었고 음악을 멈추라는 간수들의 독촉에도 모르는 척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은 벌로 흠씬 두들겨 맞고 2주 동안 독방 신세를 지게 됩니다. 창백하고 초췌한 몰골로 독방에서 나온 앤디에게 동료들은 그 안에서 어떻게 지냈냐고 묻습니다. 앤디는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놀라서 녹음기를 가져갔냐고 다시 묻자 그는 자신의 머리와 가슴을 가리키며 "여기에 있어. 그것이 음악의 아름다움이야.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지.”라고 웃으면서 말합니다.

 

출처 : 구글 이미지


이번에는 이탈리아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이야기입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던 1930년대말의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약간은 모자란 듯 얼치기지만 늘 즐겁고 낙천적인 귀도가 삽니다. 감히 넘볼 수 없는 집안에 약혼자까지 있는 아름다운 선생님도라를 사랑하여 순수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만으로 마음을 얻고 함께 도망까지 가야 하는 우여곡절 끝에 결국 결혼에 이르러 아들 조슈아를 낳고 행복하게 삽니다그러나 그것도 잠시나치가 이탈리아를 점령하면서 유태인인 귀도와 아들 조슈아는 수용소로 끌려가고, 유태인이 아니 도라도 고집을 부려 그들을 따라나섭니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도 귀도는 어린 아들을 안심시키려고 그들 모두는 게임을 위해 특별히 선발된 사람이라며 누구든 주어진 어려움을 다 이겨내 1,000점을 먼저 따는 사람이 진짜 탱크를 상으로 받게 된다는 거짓말을 합니다.  

 

출처 : http://kimsigyun.com/?p=687


그러던 어느 날, 귀도는 독일군 장교 숙소에서 열리는 파티에 불려가 시중을 들게 됩니다. 음식을 나르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중에 축음기를 발견한 그는 건너편 여자 수용소에 있을 아내를 생각하여 소리가 그쪽을 향하도록 축음기를 돌려놓고 음반에 바늘을 올려놓습니다. 그러자 오펜바흐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에 나오는 '뱃노래'가 흘러나옵니다어둡고 추운 수용소의 침상에 힘없이 누워 있던 도라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는 홀린듯이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고 어느덧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입니다.


호프만의 이야기'중 '뱃노래'-오펜 바흐(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오펜바흐는 19세기 파리에서 활약한 오페레타 작곡가입니다. "지옥의 오르페오", "아름다운 핼렌"과 같은 작품들이 인기를 끌며 명성과 부를 누렸지만 오페라가 아니라 그보다 가볍고 통속적인 오페레타로 성공했다는 자격지심에 반드시 오페라를 써서 인정받겠다는 일념으로 작곡한 야심작이 바로 "호프만의 이야기"입니다.옛 연인이며 오페라 가수인 스텔라의 초대를 받고 뉘른베르크의 한 술집에 나타난 호프만은 스텔라를 기다리는 동안 그곳에 모인 학생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했던 세 번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이야기가 3막에 펼쳐지는데 베네치아가 무대입니다줄리에타의 유혹에 넘어간 호프만은 결투 끝에 줄리에타의 연인 쉴레밀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줄리에타를 뒤에서 움직인 악당 다페르투로의 음모였음이 밝혀지고 달빛 흐르는 밤, 줄리에타는 다페르투토라와 함께 곤돌라를 타고 그가 보는 앞에서 사라집니다. '뱃노래'는 줄리에타가 호프만의 친구인 니콜라우스와 함께 곤돌라를 타고 부르는 이중창으로 여기서 니콜라우스는 남자지만 오페라에서는 메조소프라노가 남장을 하고 그 역할을 맡습니다. 혹시나 그들이 처한 참혹한 현실을 아들이 눈치챌까봐 귀도는 날마다 기지를 발휘해서 동분서주 합니다


출처 : http://bach1685.tistory.com/105


마침내 독일이 패망하자 귀도는 먼저 조슈아를 숨겨두고 아내 도라를 구하려다가 독일군에게 붙잡혀 총살을 당하지만 끌려가면서도 숨어서 지켜보는 아들을 생각해 짐짓 즐거운 일인 양 윙크를 하면서 태연하게 걸어갑니다. 조슈아는 날이 밝을 때까지만 들키지 않으면 게임에서 이긴다는 귀도의 말을 정말로 믿고 나무 궤짝에 꼼짝 않고 숨어 있다가 다음날 밖으로 나와 주변을 살피는데 그 앞으로 거짓말처럼 연합군의 탱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나타납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i-na


한때는 거리마다 음악이 넘쳐 홍수처럼 범람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관공서에서는 새마을 노래를 틀었고 동네 가게에서는 유행가가 흘러나왔습니다. 골목길을 리어카로 돌아다니는 행상들까지 음악을 앞세워 나 여기 있다며 외쳤습니다. 확성기로 울려퍼지는 행진곡을 들으며 운동장을 가로질러 등교를 했고 쉬는 시간과 점심 시간에는 교실 스피커에서도 잔잔하게 음악이 흘렀습니다. 하도 들으니 저절로 다 외웠지만 그때는 무슨 곡인지도 모르고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다 나중에야 그 곡이 조셉 수자의 행진곡이라는 것을 알았고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지금 이랬다가는 소음 공해에다 저작권 침해라며 난리도 아닐겁니다. 누구나 스마트폰과 이어폰만 있으면 지구상의 무슨 음악이든 골라 들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도 가끔은 그때가 몹시 그립습니다.어느덧 거리의 캐롤마저도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전에는 여기저기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리기 시작하면 이제 한 해가 저무는구나 싶어 묘한 감상에 빠져들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12월도 그저 열두달 가운데 하나일 뿐이고 매듭지어야 할 이런저런 일로 마음이 무겁고 몸이 지치는 나날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혼자 듣는 음악 말고 함께 듣는 음악이 그립습니다. 때로는 시간을 내서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함께 들을 수 있는 음악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쁘게 길을 걷다가도 어디선가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 들리면 문득 걸음을 멈추고 잠시나마 날개를 펴고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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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이루지 못한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고)박성용 회장의 꿈[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이야기] 이루지 못한 금호문화재단 이사장 (고)박성용 회장의 꿈

Posted at 2017.11.16 09:04 | Posted in 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오래 전 브리태니커 사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참여하면서 최소한 그 사전을 만든 사회와 문화권에서는 예술의 후원자들을 예술가들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많은 예술 후원자들의 이름과 업적이 사전 안에 수록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라면 어떤 이가 여기에 해당될까 생각해보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이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음악 분야로 좁혀 보면 그 숫자는 더 줄어들고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 박성용 회장입니다. 금호그룹의 회장으로 있으면서 금호현악사중주단을 창단하여 지원했고 무엇보다 금호문화재단과 금호아트홀을 통해 우리의 음악영재들을 발굴하고 후원하는 일에 열과 성을 다하였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박성용 회장의 잘 알려진 삶과 업적이 아니라 그 분을 직접 만나서 보고 들은 것들을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합니다.

 

고 박성용 회장(출처 - http://www.ohmynews.com)


한국예술종합학교가 문을 열고 얼마지 않아 발전재단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금호그룹의 박성용 회장은 재단의 이사로 추대되었고 당시 사무국장이었던 저와의 인연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늘 재단 회의에서만 뵙다가 금호그룹 회장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선 회장실이라면 당연히 꼭대기 층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낮은 층에 자리 잡고 있어 의아했습니다. 비서실을 찾았더니 한 사람의 비서가 회장실뿐만 아니라 부회장실까지 다 담당하고 있어 당황했고 회장실로 들어섰더니 너무나 단촐하고 소박한 집기를 보고 또 한 번 놀랐습니다.


출처 : http://www.kartsfund.kr/


그 다음 만남은 어느 어색한 회의에서였습니다.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수출 천억불을 달성했다고 해서 그 업적을 널리 알리고 자랑하는 문화행사를 만들자는 자리였습니다. 주무 장관과 관계 기관 종사자, 그리고 재계의 몇몇 분들이 참석하였고 그 가운데 박성용 회장도 있었습니다. 회의라기보다 정부의 의지와 행사의 내용을 전달하고 협조를 구하는 모임이었기에 다들 별 다른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고 주로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는 모양새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제가 자연스럽게 국가 경제와 기업 경영으로 모아지자 다들 한마디씩 거들면서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마침내 박성용 회장에게 순서가 돌아가자 그는 돌연 정부의 경제 정책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참석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지만 박 회장 스스로는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이 앉은 식탁 위에 흩어진 빵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긁어 모아 입안에 털어 넣는 행동까지도 전혀 스스럼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도 몇 번 초대를 받아 함께 식사한 적이 있지만 참 잘 먹었다 싶은 기억은 별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점심은 주로 광화문 회사 근처의 평범한 이탈리아 음식점이었고 그는 늘 똑 같은 파스타를 주문했기에 초대 받은 입장에서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늘 그랬듯이 식탁 위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입안에 털어 넣었고 그때마다 단 한 번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이렇게 몇 번의 만남이 이어졌지만 그에게서 단 한 번도 대기업 회장이라는 직함에 어울린다 싶은 화려함이나 위압감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검소하고 소탈한가 하면 고지식하기까지 한 성격이 마치 학자를 보는 듯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만난 자리에서 '경영자보다는 교수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꺼냈더니 금방 손사래를 치며 '짧지만 공직자로도 일해보고 다른 일도 해봤지만 대학에서 교수로 있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말하길 '한 시간 강의를 준비하려면 일주일을 꼬박 연구실에 틀어박혀 준비를 해야 했다''그 때는 정말 잠잘 시간도 없었다'며 고개를 흔들었습니다


출처 : http://www.dailian.co.kr/news/view/36120


어느 해인가 금호문화재단이 선정하는 "금호음악인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을 때의 일입니다. 열띤 토론으로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겨우 수상자를 결정할 수 있었고 바깥은 이미 해가 져서 어두워진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담당자가 전하길 그때까지 박성용 회장이 퇴근하지 않고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박 회장의 관심과 열의에 감탄을 했고 어느 심사위원은 '진즉에 말하지 그랬느냐''그랬으면 좀 더 일찍 끝냈을 텐데'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심사가 모두 끝났다는 보고를 받은 다음에야 그 자리에 잠시 들린 박 회장은 마치 자신이 상을 받는 것처럼 들떠서 어쩔 줄을 몰라 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담당자에게 심사비가 적으니 더 올리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심사위원들에게 저녁식사까지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따라 나서면 어느 식당을 갈지, 가면 무슨 음식을 먹게 될지를 너무나도 잘 일고 있었기에 사양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출처 : http://www.dailian.co.kr/news/view/36120


마지막 식사 초대는 너무나도 뜻밖이었습니다. 한 동안 보지 못했고 딱히 만나야 할 일도 없는데 함께 저녁 하자는 전갈이 왔고 그렇게 불려 간 자리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고급 식당이었습니다. 이 분이 어쩐 일인가 싶기도 하고 또 한 편으로는 혹시나 어려운 부탁이 있는 건 아닌지 걱정하고 있는 동안 이야기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얼마지 않아 미국에 다녀 올 텐데 돌아오면 온갖 꽃과 나무를 다 가꾸는 식물원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이미 그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준비가 진행 중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그분의 관심은 오직 음악이었고 그중에서도 특별히 재능 있는 어린 음악도를 발굴하여 그 성장을 돕는 일을 무엇보다 큰 기쁨으로 여기는 분이었는데 느닷없이 식물원을 만드는 데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전에 음악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이나 신이 나서 눈빛이 반짝이는 걸 보면 틀림없이 뜻한 바 그대로 이루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도 채 실감이 나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는데 그는 식물이 왜 좋은지 속마음을 살짝 비추었습니다. 사람은 마음을 다해 아끼고 보살펴도 그걸 몰라주거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식물은 언제나 정성을 들이는 만큼 크게 잘 자라서 보답을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느닷없이 부고가 날아들었습니다. 그제서야 미국으로 간다는 일이 암수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며 그 꿈을 이루려는 뜻을 꺾지 않았던 것입니다. 한 때는 그를 보며 학자나 교수가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보다 더 잘 맞는 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가끔씩 그를 떠올릴 때면 언제나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호미를 들고 모습입니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입니다.


  1. 정성진
    저 역시 Mecenat하면 떠오르는 분이 박성용회장님입니다. 이탈리아의 메디치가문 처럼 기억되어야 할 분인데 널리 알려지지 않은듯 해 안타깝기도 합니다. 음악영재 발굴부터 명품 고악기 무상임대등의 사업을 통해 세계속으로 달려나간 우리 음악인들을 보면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고인의 뜻이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더 많은 기업들이 '금호'나 '이건'처럼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사업에 눈길을 돌리고 실천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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