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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 이야기] 사랑, 운명, 인생 그리고 사람다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

by 블로그신 2017. 7. 12.


BBC 지식 채널의 "오지의 사람들"이란 프로그램에 소개된 한 인도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한때 그는 명문가의 엘리트였습니다. 아버지는 옥스포드를 나와서 주지사를 지냈고 그 또한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종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한 죄로 군복을 벗어야 했고 계급이 다른 농민의 딸과 사랑에 빠져 집에서도 쫓겨났습니다.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정착하여 집을 짓고 땅을 일구며 가축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남매를 낳아 사랑을 주고 자유를 주었습니다. 학교 가지 않겠다는 딸을 말리지 않았고 멀리 호주까지 가서 살겠다는 아들도 축복했습니다. 그렇게 모두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지만 그들은 틈만 나면 험한 길을 며칠이나 걸어서 부모를 찾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아버지가 부르시면 곁에 와서 살겠다고 합니다. 저녁상을 물리면 가족이 모두 둘러앉아 아버지의 하모니커 연주를 듣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흥이 나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옷을 벗고 바위에 앉아 햇살을 받고 바람을 맞으며 어느덧 자연과 하나되는 느낌을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가끔씩은 산 아래 마을에다 맡겨놓은 낡은 오토바이를 정성껏 닦고 손질해서 달리는 걸 즐깁니다. 다른 이들의 수고를 끼치지 않으려고 이미 오래 전에 자신의 무덤을 미리 파놓고 틈만 나면 들여다 보는 것도 또 다른 그의 낙입니다. 길게 눕지 않고 앉을 수 있도록 좁고 깊게 판 무덤에 들어가서는 그 아래 아름다운 자연과 자신이 일군 삶의 터전을 지긋이 바라봅니다. 그가 보여준 삶의 모습 하나하나에 마음을 뺏긴 진행자가 끝으로 혹시나 살면서 후회는 없는지를 조심스레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딱 한가지 회한이라면 자신이 직접 비행기를 조종해서 그의 삶이 깃든 이곳의 상공을 누비며 그 아래를 한 눈에 내려다보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자유로운 영혼의 참으로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몸담고 있는 학교에 몸이 불편한 청소부 아저씨가 있었습니다. 한쪽 다리를 몹시 절면서도 늘 바닥을 쓸고 휴지를 줍느라 잠시도 쉬지 않았고 눈을 부릅뜨고 사방을 살피며 더러운 곳만 찾아다녔습니다. 무뚝뚝한 표정과 불편한 거동으로 어디든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불쑥 나타나는 그분을 다들 조금은 경계하며 어색하게 대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가 남다른 생각으로 이분을 지켜보았고 감사한 마음을 전달할 무언가를 생각했다고 합니다. 다리를 끄느라 한쪽 신발 바닥이 먼저 닳아 망가진다는 걸 알고는 따로 밑창을 덧댄 운동화를 선물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그 학생을 수소문하였으나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영재로 입학한 발레전공 신입생인데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따뜻한 시선과 속깊은 생각이라니! 정말이지 꼭 만나고 싶었는데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이제는 다리 저는 청소부 아저씨도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바르고 어질며 따뜻한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었는데 그걸 모르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아를에서 시내버스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버스에 오르더니 큰 가방을 열어 한참이나 뒤졌지만 차삯으로 쓸 동전을 찾지 못했습니다. 버스 기사는 그냥 타도 된다는 손짓을 했지만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러자 그 기사는 할머니 곁으로 다가와서 동전 찾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그러기를 또 얼마가 지난 후 결국은 버스 기사가 먼저 동전을 찾아 머리 위로 흔들었고 그제서야 할머니 뒤로 줄을 서서 버스를 타려고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환성을 질렀습니다.

아를에서의 마지막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고흐가 즐겨 찾았다는 근처 카페로 가서 라따뚜이를 주문했습니다. 그러자 웨이터는 그 메뉴가 없다면서 아마도 근처의 다른 음식점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내일 이곳을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다며 있는 동안 프로방스의 대표적인 음식들을 다 맛보았는데 라따뚜이만 못먹고 간다면 얼마나 아쉽겠냐며 짐짓 간절한 표정을 지어보였습니다. 난처해진 그는 가서 물어보겠다며 안으로 들어갔고 사정을 전해 들은 주방장은 아쉬운 대로 주방에 있는 야채를 써서 만들어보겠노라 말했습니다. 그렇게 라따뚜이를 맛있게 먹고 계산서를 달라고 하자 이번에는 카페 주인이 나와서 메뉴에 없는 음식이라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뜻밖의 호의를 두번씩이나 그저 받을 수는 없다고 했지만 그 역시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요리 "라따뚜이"

 

그때 카페 한 쪽에서 식사를 주문하고 있는 한 여성이 눈에 띄었습니다. 검고 긴 생머리에 크고 까만 눈동자를 가진 전형적인 프로방스 여인이었습니다. 허리가 구부정한 백발의 노인과 마주앉은 그 여인은 아기 돌보듯 그를 대했고 그 모습이 너무 정겨워 카페 주인에게 혹시 아는 사람인지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말인 즉 그 두 사람은 근처에 사는 아버지와 딸인데 얼마 전까지 따로 살다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면서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그 부녀가 주문한 밥값을 계산하는 것으로 그곳에서 받은 친절과 배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대신했습니다. 물론 그 두 사람은 모르는 일이었고 문을 나서는 내게 카페 주인은 활짝 웃으며 악수를 청했습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의 별들은 그 어느 때보다 반짝였고 쏟아질 듯 알알이 넘쳐 가슴 속에 박혔습니다.

 

 



영화 "엘리노어 릭비"를 봤습니다 비틀즈 노래 제목과 영화 제목이 같아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입니다 ", 외로운 사람들을 보아요. 외로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요? 외로운 사람들. 그들은 모두 어디에 속해 있는 것일까요?" 비틀즈의 앨범 "리볼버"에 수록된 "일리노어 릭비"의 후렴구입니다. 이처럼 심각한 질문에 같은 앨범에 수록된 "옐로우 서브머린"은 아이처럼 해맑은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우린 모두 노란 잠수함에서 살고 있어요." 그렇습니다 우린 너나없이 한 배에 타고 망망대해를 나선겁니다. 그렇게 정처없이 흘러가고 있는겁니다. 영화에서 두 남녀는 서로를 끔찍이 사랑하면서도 함께 있지 못합니다. 처음엔 여자가 걷는 길을 남자가 멀리서 뒤따르지만 나중엔 앞서 걷는 남자의 뒤를 여자가 떨어져 걷습니다.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향하고 있지만 무작정 따라가는겁니다. 어디라서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라서 중요합니다. 나란히 서서 손을 잡거나 어깨를 기대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그렇게 한 배를 탔다는 게 사랑이고 운명이고 인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