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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진짜 사나이”를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를 통해 간직하게될 평생의 추억...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8. 3.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30)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진짜 사나이”를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 하는 국방의 의무, 이 신성한 의무를 마치고 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가슴 속 깊이 지워지지 않는 추억을 평생 간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슨 훈장이나 되는 것처럼 틈만 나면 꺼내놓고 자랑하지 못해 안달입니다. 물론 있는 그대로를 내놓을 리가 없습니다. 적당하게 다듬기도 하고 조금은 부풀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자랑삼아 떠벌리는 이야기는 이처럼 제 각각이지만 목이 터져라 부르고 또 불렀던 군가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 숱한 군가들 가운데 우리 국민 누구나가 알고 또 부를 수 있는 대표 군가가 바로 진짜 사나이입니다. 군대를 가려면 한참이나 기다려야 하는 청소년들은 물론이고 병역과는 상관도 없는 여자들까지 다 아는 노래입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우스개 소리로 진짜 사나이를 모르면 간첩이라고 해야겠지요.

 

 

그들이 있기에 국민이 다리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진짜사나이 가사]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전투와 전투속에 맺어진 전우야
산봉우리에 해뜨고 해가 질적에
부모형제 나를믿고 단잠을 이룬다

입으로만 큰소리쳐 사나이라드냐
너와나 겨레지키는 결심에 살았다
훈련과 훈련속에 맺어진 전우야
국군용사의 자랑을 가슴에 안고
내고향에 돌아갈땐 농군의 용사다

겉으로만 잘난체해 사나이라드냐
너와나 진짜사나이 명예에 살았다
멋있는 군복입고 휴가간 전우야
새로운 나라 세우는 형제들에게
새로워진 우리생활 알리고 오리라

 

 

 

그런데 도대체 이 노래를 작곡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아서 별로 아는 사람이 없지만 작곡가 이흥렬 선생이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흥렬 선생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 해방 이후까지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 간 선구자이며 꽃구름 속에바우고개를 비롯한 많은 가곡들을 남긴 국민 작곡가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노래 섬 집 아기를 남기신 분이기도 하지요. 음악을 좀 안다는 사람이라면 이흥렬을 모를 리가 없고 그의 대표곡들도 손꼽아 헤아릴 수 있겠지만 그가 진짜 사나이를 작곡했다는 사실을 알고 또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작곡가 이흥렬을 모르는 분이라 해도 아마 섬집 아기진짜 사나이가 모두 한 작곡가의 머리와 가슴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909년 07월 17일 대한민국 원산에서 출생하셔서 1980년 11월 17일 세상을 떠남

 

믿어지지 않는 사실은 또 있습니다. 선생이 이 땅에 오신 날이 717일이고 떠나신 날이 1117일인데 자녀들이 모두 17일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17이라는 숫자와의 별난 인연이 다음 대에 이르러 엉뚱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작곡가로서 선생 못지않은 업적을 쌓아가고 있는 차남 이영조는 슬하에 남매를 두었고 이들의 생일은 17이라는 숫자와는 전혀 무관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각자가 결혼하여 집안에 들인 배우자의 생일이 모두 17일이라는 것입니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정말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고 이흥렬 박사님의 노래는 정겨운 가사들이 많다.

 

그러나 선생의 집안과 그 내력을 들여다보면서 정말이지 경이롭고 우러러 보이는 것은 3대를 이어 가업을 지키고 굳건하게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아들 이영조와 이영수가 이미 작곡가로서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가고 있고 이영조의 아들 이철주가 또 그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3대에 걸쳐 한 길을 걷고 있는 집안도 무척 드물지만 특별히 작곡가라는 업을 3대까지 이어가고 있는 예로는 이흥렬 선생의 집안이 유일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흥렬 선생님의 가족사진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로 시작하는 신약성서 마태복음 1장은 언제 읽어도 가슴이 뭉클합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브라함에서 비롯하여 예수까지 이어지는 한 집안의 족보를 그저 나열한 것에 불과하지만 그 속에는 이렇듯 단절 없이 대를 물리면서 완성해간 말씀과 믿음의 역사가 숨어 있는 셈이고 그 우여곡절이야말로 기적이고 희망이며 또한 보람이자 긍지인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지키고 이어간다는 것은 이처럼 중요한 일이지만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중요하다면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힘든 일이라면 피하고 보자는 것이 우리네 심사라는 것쯤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는 일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다음에는 아무도 나서질 않는 것이 지금의 세태입니다. 뜻하는 바가 있어 아비가 자신의 업을 물리려 해도 아들이 이를 따르지 않고 혹시 아들이 아비의 뜻을 받들려고 해도 어미가 이를 가만 두지 않습니다. 이렇다 보니 전통이란 걸 세울 수가 없고 신뢰라는 걸 찾을 수가 없습니다. 무릇 모든 것이 가정에서 비롯되거늘 가정에서 찾을 수 없는 것이 사회에서 보일 리가 없습니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갈등과 대립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고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전통이 없기 때문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요즈음 무대에서 살겠다고 고집하는 여식이 무척이나 고민스럽습니다. 혹시나 그럴까 싶어 함께 공연 보는 재미까지도 포기했었는데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지금에 와서 요지부동의 결심을 굳히고야 말았습니다. 성악가이셨던 엄친 또한 노래를 하겠다는 아들을 끝내 말리셨습다. 그래서 전혀 딴 길을 걷는 줄 알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결국은 음악과 그 주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스스로의 사연이 있기에 망설임 없이 대를 이어가는 집안이 예사롭게 보이질 않습니다. 하물며 그것이 한 세대를 넘고 또 한 세대를 더한 대물림이라면 축복과 기적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족들이 모여 음악을 즐겼던 이건 가족음악회.

클레식 음악이라는 주제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모인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은 곧 축복의 시간입니다.

 

작곡가 이흥렬 선생이 이 땅에 오신 지 올해로 꼭 100년이 되었습니다. 2009년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도 여기저기 가는 곳마다 하이든의 서거 200주년이라며 난리들이고 멘델스존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되었다고 법석들입니다. 게다가 헨델이 세상을 떠난 지 250년이 되었다면서 이것 또한 그냥은 지나치기 힘든 모양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땅에서 태어나 우리 곁에서 살다 간 작곡가 이흥렬 선생의 탄생 100주년이 바로 올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선생은 이미 우리 곁을 떠나셨지만 그 아들이, 또 그 손자가 선생의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바라건대 손자의 아들이,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 손자의 손자까지도 선생의 뒤를 이어갔으면 합니다. 그래서 또 한 100년이 지나고 다시 200년이 더 지났을 즈음에 그 집안의 누군가가 탄생 200주년이라고, 아니면 서거 200주년이라고 지구촌이 온통 호들갑을 떨었으면 소원이 없겠습니다.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