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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홍승찬교수의 클래식 톡톡

[홍승찬 교수의 재미있는 클래식음악 이야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 타이타닉의 마지막을 지킨 여덟명의 음악가를 아시나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6. 19.

 

 

 

 

 

홍승찬 교수의 클래식 음악(26)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

 

 


여러분은 혹시 바이올리니스트 월레스 하틀리(Wallace Henry Hartley)를 아십니까? 아마 클래식 음악에 꽤 관심이 있거나 조예가 깊다는 분들도 그 이름을 듣거나 기억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혹시 영화 타이타닉을 보셨는지요? 그렇다면 배가 기울어져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때까지 갑판에 서서 끝까지 음악을 연주했던 악사들의 모습은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 여덟 명의 악사들을 최후의 순간까지 이끌었던 바이올린 연주자가 바로 월레스 하틀리입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과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하며 책임을 다하고자 한 선장의 결연한 의지도 감동적이었고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연약한 여성들을 위해 기꺼이 구명선의 자리를 양보하고 죽음을 맞이했던 일등실 영국신사들의 신사도 또한 너무나도 숭고했지만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가슴 뭉클했던 장면이라면 죽음의 순간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고 음악을 연주한 악사들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RMS 타이타닉호의 악단 단장이였던 월레스 하틀리(Wallace Henry Hartley)

 

누구라도 갑작스런 천재지변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면 살기 위해 무슨 일이든 주저치 않을 것입니다. 지상낙원이라던 아이티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간 군상들의 처절한 몸부림과 이로 말미암아 나날이 더해가고 있는 끔찍한 참상을 보고 있노라면 생존 앞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인간의 존엄성이 서글프기만 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오래 전에 본 영화 타이타닉이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것이겠지요. 누구도 이기기 힘든 죽음의 공포를 이겨내고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죽음의 순간까지 음악을 연주했던 타이타닉의 여덟 명 악사들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여덟 명 모두의 신원이 분명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모범을 보여 다른 악사들이 따르도록 했던 밴드 마스터 월레스 하틀리의 존재만큼은 확실하게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1878년 영국의 콜른에서 태어난 하틀리는 보험판매원을 아버지로 둔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학교를 졸업한 후로는 줄곧 여객선의 악사로 일했습니다. 죽기 전까지 무려 70여 차례의 항해를 마쳤고 타이타닉에 오르기 직전에 마리아 로빈슨(Maria Robinson)이라는 아가씨와 결혼을 약속하였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처음에는 승선을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최고 여객선의 처녀항해에 참여하고픈 의욕이 앞서 계획을 바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 항해가 그의 마지막이 되었고 그의 사랑 또한 그렇게 끝나 그의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하틀리의 장례식에는 무려 4만 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그의 숭고한 죽음을 추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고향 콜른에는 3미터 높이의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호주의 내륙도시 브로컨 힐(Broken Hill)에는 하틀리를 포함한 여덟 명 악사들의 희생을 추모하는 기념탑이 서 있습니다. 얼핏 영국도 미국도 아닌 호주에 있다는 것이 엉뚱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된 사연에는 잔잔하지만 또 다른 감동이 있습니다. 20세기 초 은과 아연 등을 채굴하는 광산으로 경기가 좋았던 이 도시는 스포츠 말고 별 다른 오락거리가 없었지만 네 개나 되는 밴드가 있어 나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고 합니다. 어느 날 멀리서 전해온 타이타닉호 악사들의 미담에 감동한 이곳 밴드의 악사들이 기념탑 건립기금을 위한 모금운동에 앞장서게 되었고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19131221일에 마침내 추모탑 제막식이 열릴 수 있었습니다. 제막식에서 네 개의 밴드가 참여한 연합악대는 타이타닉호 침몰 당시 악사들이 연주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찬송가 “Nearer, My God, to Thee"(내 주를 가까이)를 연주했고 기념비에는 그 찬송가의 가사와 함께 오선지에 그려진 네 소절의 악보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사실 당시 타이타닉호의 악사들이 실제로 이 곡을 연주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많은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당시 일등실 승객이었던 캐나다인 베라 딕(Vera Dick) 여사와 알버트 부인 등 몇몇 승객들이 그렇게 증언했고 하틀리 또한 평소 측근들에게 자신이 만약에 그런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바로 그 찬송가를 연주하겠노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지만 타이타닉호 사건을 다룬 책 “The Story of THE TITANIC""A Night To Remember”에는 다른 증언과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타이타닉호의 통신실에서 일했던 이등 통신사 해롤드 브라이드에 따르면 당시 악사들이 연주했던 곡은 가을”(Autumn)이었다고 하고 당시 구명정 하강을 직접 지휘했던 항해사 라이드는 곡명은 알 수 없지만 찬송가가 아니라 경음악이었다는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베라 딕 여사의 경우 배가 침몰하기 1시간 20분 전에 구명정을 탔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이미 악사들의 연주를 들을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는 것이고 진술자들 가운데 브라이드가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에 더 신빙성을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무슨 곡을 연주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듯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누구나 살려고 발버둥치는 긴박한 상황에서 음악가로서의 본분과 사명을 잊지 않고 음악을 통해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행동을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음악가라면,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된다고 말하고 싶지만 감히 입 밖에 낼 수가 없습니다. 이들 말고 누가 또 이렇게 했는지 누구라서 이렇게 할 수 있는지를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감히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통해 다른 이들이 위로를 얻고 평정을 찾았겠지만 그들 스스로가 또한 그 음악에서 힘을 얻어 차가운 물 속으로 가라앉는 최후의 순간에도 동요치 않고 평안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찬송가 내 주를 가까이들으면서 이 시간 마치겠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개 베고 잠 같습니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 길 되나니 은혜로다


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Nearer, My God, to Thee /L.Mason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E'en though it be a cross
That raiseth me

Still all my song shall be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Though like the way wanderer
The sun gone down

Darkness be over me
My rest a stone

Yet in my dreams I'd be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There let the way appear
Steps unto heaven

All that thou sendest me
In mercy given

Angels to beckon me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Nearer, my God, to thee, nearer to thee

 

글 : 홍승찬 교수
편집 : 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