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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음악회 Talk Talk/이건음악회 소개

[역대 이건음악회 소개] 14회‘곰삐냐 보칼레’

by 블로그신 2018. 11. 9.

본 글을 이건음악회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시간으로,

해당포스트는 2003년에 있었던 이건음악회 14회 소개글입니다.


인사말씀

 

열네번째 이건음악회 초청연주자는 소프라노와 두 대의 바이올린, 그리고 바로크 기타와 첼로, 하프 시코드로 구성된 네덜란드의 곰삐냐 보칼레입니다.

이들은 첫 내한공연에서 다채롭고 활기찬 바로크 음악세계를 통해 잠시나마 마음의 고향을 반추케하는 값진 시간을 선사하였습니다. 특히, 극도로 억제된 소프라노의 협연은 진실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 음반은 이들이 지난 929일 예술의 전당콘서트 홀과 101일 서울  KBS홀에서 연주 하였던 실황을 녹음한 것입니다.

이건음악회를 성원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200311월 이건가족을 대표하여 박영주 드림



 


꼼빠냐 보칼레(Compagnia Vocale )


1994년 결성된 꼼빠냐 보칼레는 우리에겐 약간 낯선 17,18세기 보컬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네덜란드 앙상블이다. 이들은 주로 브뤼헤, 위트레흐트, 인스부르크, 파리 드에서 열리는 유럽의 주요 고음악 축제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다채롭고 흥미 있는 연주 스타일이 돋보이는 이들의 음악은 몇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두대의 바이올린, 테오르보, 바로크 기타, 첼로와 하프기코드가 어우러지는 풍부한 성량의 통주저음이 사람의 음성과 큰 대조를 이루면서 다양한 음의 세계를 제공한다. 청중들은 꼼빠냐 보칼레의 연주회를 통해 다양한 악기의 독특한 결합이 빚어내는 색다른음의 세계에 매료될 것이다.

둘째, 꼼빠냐 보칼레의 프로그램은 노버트 듀보위, 후안 호세 카레라스 그리고 루아스 슈타인과 같은 유명 음악학자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독일과 이탈리아,네덜란드와 유럽 등 다양한 유럽 국가들의 17세기 풍연주 스타일을 완벽히 계승하고 있다.

 

 

 

 

 


작곡가 및 곡목 해설


아르칸젤로 코렐리Aracngelo Corelli(이탈리아 1653-1713)

코렐리는 볼로냐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초기 음악 공부를 시작하였으며, 1675년부터는 로마로 옮겨 주요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의 두 작품집임 교회 트리오 소나타op.1(1681),op.3(1689)과 두개의 실내악 트리오 사나타 op.2(1685), 두개의 바이올린 통주를 위한 작품 op.4(1694) 등은 보컬과 유사한 벨칸토 가장 멜로디와 볼협화음으로 보다 풍성한 느낌을 주는 대위법 장르와 균형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었다. 그의 곡에서 드러나는 스타일은 18세기 초 바니올린 음악 예술을 대변해주고 있다.

 

후안 이달고 Juan Hidalgo(스페인 1612~1685)


이달고는 드물게 유럽을 여항하지 않고 마드리드 스페인 왕실에서만 활동하던 스페인 작곡자이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문확교류가 상당히 활발했고 나폴리에서 개발된 이탈리아식 오페라 오페라의 기본형식으로 알려져있었다.

이달고는 1660년에 작구어인스페인어로 이탈리아식의 오페라를 성공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작곡가이기도 한데, 그의 인기비결은 그가 작곡한 많은 작품들뿐만아니라 계속되는 정치적인 격동에도 불구하고 궁정에서 그의 지위를 유지하였다는 데에 있다. 이번 아리아는 그의 1675년작 오페라 ‘El Templo de Palas’중에서 발췌한 것이다.

 

앙리드 베일리 Henri de Bailly (이탈리아 1678~1741)


베일리는 파리의 루이 13세 궁정에서 일하며 왕의 해외 여행을 수행하였다. 1624년에는 영예로운 최고 음악 관리관으로 임명되었고, 작곡가와 댄서로서 명성을 떨쳤을 뿐만아니라 대중가수로도 활약했다. 그가 작곡한 파사갈리아(3박자의 조용한춤곡) ‘La Locura’는 스페인의 대중 춤곡 ‘La Folia’에 바탕을 두고 있다.

 

안토니오 비발비 Antonio Vivaldi(이탈리아 1678~1741)


비발디는 1678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1741년 반에 세상을 떠난 이탈리아의 위대한 작곡가인 동시에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가 였으며, 또한 교육가이기도 하였다. 1703년 카톨릭 성당의 사제로 출발하였으니 건강이 나빠져 1년후에 물러나 그 후로는 전적으로 음악에 헌신하였다. 비발디는 붉은 머리였기 때문에 항상 빨강머리의 사제라고 불렸었다. 그리고 1703~1740년 가지 베니스의 여자 고아원인 피에타 음악학교의 지휘자 겸 작곡가, 교사, 음악 감독을 역임했었다. 그는 이 학교를 위하여 뫁[트와 간타타, 오라토리오 등을 작고 하였다. 특히 비발디가 결정한3악장(알레그로-아다지오-알레그로)에 의한 협주곡 형식은 바흐에게 영항을 주어 바로크 싣의 가장 중요한 협주곡 형식이 되었다.

 

그의 주요 작품에는 신포니아 23, 합죽협주곡<조화의 영감>,바이올린과 관현악을 위한 <사계>, 갖가지 독주악기를 위한 협주곡다수와 실내소나타 12, 바이올린 소나타17곡등이 있다.

비발디는 작품 ‘La Foila’ 에서Arcangelo Corelli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며, 이 오래된 춤곡을 오페라나 축제의 유쾌한 분위기에 쓰이는 경쾌한 멜로디로 재해석하였다.

 

프란체스코 프로벤짤레Francesco Provenzale (이탈리아 1627~1704)


프로벤짤레는 나폴리 음악학교의 전산인 곳에서 수학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곳은 후에 알레산드로 스카를라티에 위해 꽃을 피운 곳이기도 하다, 나폴리는 유럽에서 처음으로 음악 예술학교가 세워진 곳이, 위대한 작곡가 들에게 존경 받는 교수직이 주어지는 전통을 세웠고 이로 인해 각 지역의 학생들이 모여 들었다. 당시 나폴리에는 4개의 음악학교 있었고, 프로벤짤레는 그중 한곳에서 오페라 경력을 위해 훈련하는 성악가들을 가르쳤다. 그의 칸타타 ‘squarciato appena hevea’는 남편의 전자 소식을 듣고 슬퍼하다 죽은 스웨덴 여황에 대한 Luigi Rossi 의 초기 작품을 풍자한 것으로 , 프로 벤짤레는 드라마틱한 아리아들을 대중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길거리 음악들로 대체하였다.

 

자롤라모 프레스코발디 Girolamo Frescobaldi(이탈리아 1583-1643)


프레스코발디는 오늘날 역사학자들에게 오르간의 팔레스트리나로 불린다. 그는 젊어서부터 로마의 성베드로 대성당 오르간 연주자로서 활약하였으며 수많은 오르간 곡 외에도 마드리갈.기악합주곡 등을 작곡하였다. 그의 오르간 곡은 풀부한 표현력과 색채적인 반음계법을 측징으로 하며 이후 바로크 오르간 음악의 형성에 결정적ㅇ니 역할을 하였다. 바흐 역시 그의 작품을 모방할 정도로 바로크시대의 작곡가들 에 의하여  이후 대위법 작곡의 모법이 되었다. 후반기에 그는 6년동안 Florence에서 지냈다. 1630년에는 비록 인기가 하락한 상태 였지만 두개의 노래 컬렌션인 Arie Musicale을 발표했는데 그 중아리아 ‘Cosi mi disprezzate’ 는 반복되는 베이스 패천으로 멜로디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파사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리오 카스텔로 Dario castello (이탈리아 ,연대미상)


카스텔로에 대해알려진 것은 많지 않다. 베니스의 산마르코에서 활동을 하면서 1621년과 1629년 사이에 다양한 기악의 조합을 보여주는 두개의 기악 소나타 작품집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스델로는 자신을 ‘Capo di Compagnia d’ Intstrumenti’ ,라고 칭하였다. 바이올린 뿐만 아니라 여러 관악의 다양한 연주법에 대해 완벽한 이해가 엿보이는 그의 작품으로 볼 깨 그것은 괘 적절한 이름이기도 하다. 그이 소나타는 코렐리에 의해 주로 발전된 소나타 양식을 예시하고 있으며,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사본화 되어있는 것으로 볼 때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판단된다.

 

가스파르 산즈Gaspar Sanz(스페인 ca1645~ca1715)


산즈 slamanca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한 기타 연주자로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위해 스페인 치하의 나폴리에서 꽤 오랜 기간을 머물렀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큰 인기를 얻은 중요한 기타 연주  ‘Instruccion de musica sobre la guitarra espagnola’를 작곡했다. 세부분으로 된 이작품은 모든 면에서 튜닝, 화려한 베이스 반주, 장식음을 맛 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으며 스페은 춤곡 ‘folia’ 와 카나리아 제도의 경쾌한 춤곡인  ‘canario’ 에 바탕을 둔 솔로 기타를 위한 90개의 연주곡이 들어있다. 그가 출판한 기타 교분은 오늘날의 스페인의 춤과 음악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자료가 되고있다,

 

시네모 꼬야 Simone coya(이탈리아 +1679)


꼬야는 그와 동시대의 유명인사인 프로벤짤레와는 대조적으로 생애 및 활동 경력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나폴리 인근에서 태어나, 밀라노에서 죽었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칸타타‘in questo oscuro poggio’ 1679년에 작곡 했던 칸타타와 세레나테 작품집의 일부로 남아있다. 위의 곡은 아름다운선율과 가사를 강조하는 서창부(오페라,오라토리오의 구어적인 리듬)사이의 교류를 보여주는 초기 바로크 칸타타의 훌륭한 예이다.

 

음악용어

 

폴리아Folia

Folia 란 어휘는포르투갈어가 근원인데 댄스혹은 음악소절을 뜻하며, 15세기 말부터 전해졌다고한다. 그명칭자체는 미친혹은 골이 빈을 의미한다. 1670년까지의 초기 형태는 매우 빠르고 시끄러운 댄스여서 문자 그대로 얼이 빠진 뜻 했다고 한다. 17세기 말에는 새롭고 느린형태가 나타났는데, 이 때부터 적절한 화성적 구조를 가져 코렐리비발디에 의해 완전한 균형을 이루게 된다.

 

파사칼리아 Passacalia

파사칼리아는 16세기 중엽에 유행한파사칼레(Pasacalle)라는 2박자계, 4~8마디의 행진곡이 춤곡이 된것이다. 파사칼리아가 곡 전체를 통해 짧은 주제를 고집저음으로 반복하고 있는 변주곡인데에서 파사칼레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으며, 박자는 춤곡이 되면서 느린 3박자계로 바뀌었다.

 

칸타타Cantata

칸타타라는 말이 최초로 사용되던 17세기에는 기악곡이라는 뜻의 소나타의반대어를 뜻했으며, 기악반주가 있는 여러 곡으로 구성된 성악곡의 형태를 갖는다. 이러한 곡들은 아리아, 아리옺, 레치타티보로 되어있다. 초기의 칸타타는 기악반주를 동반한 장절형식의 단순한곡으로서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무반주의 폴리포니적인 장르들, 즉 독립적인 성부들을 갖는 다성부 성악곡들과 대조적인것을 의미했다.

 

카나리오스Canarios

 카나리오스는 카나리아 풍으로라는 의미로 지중해 카나리아제도의 고유한 리듬을 가진 춤곡이다. 4분의 3박자 또는 8분의 6박자의 빠르고 경쾌함을 지녀 매우 율동적이다.

 

모테트 Motet

모테트에 관해 비교적 많이 통용되는 정의를 내려본다면, 미사를 제외한 다성부로 꾸며진 성악적 교회음악 정도이다. 주로 다성부 합창음악이지만 독창곡도 있으며, 반주가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형식또한 역사적으로 각양각색이다. 음악의 길이는 칸타타에 비해 짧다.